사랑은 묻는 것, 살피는 것, 알아차리는 것
실망에 머무르지 않고 매 순간 사랑하기로 다짐하다
“당신 요즘 어때?”
요즘 남편이 나에게 가끔 묻는 말이다. “응, 뭐 그냥 그래”하고 대답하면 “요즘 당신 스트레스가 뭐야?”하고 구체적으로 다시 묻는다. 그러면 나는 이때다 하며 미주알고주알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중간중간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표현을 하며 듣는다. 남편이 잘 들어 주니 신나게 이야기하게 되고 어느새 홀가분한 마음이 된다.
남편은 예전에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도 잘못이 있네”, “이렇게 하는 게 어때?”, “그냥 때려치워!”하며 잘잘못을 따지고 조언을 하고 빠른 결론을 내리려고 했었다. 그럴 때는 나는 그 일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어떻게 저렇게 간단하게 결론을 내려 버리나 싶어 오히려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났다. 너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래서 결론이 뭐야?”하며 말허리를 잘라 버리거나 코를 골고 자버리기도 했었다. 그러면 한참 떠들던 내가 민망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 나는 남편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위축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요즘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고 함께 화를 내기도 하며 나에게 공감해 준다. 들어 주는 것을 넘어 물어봐 주니 감동이다.
어제는 어디 경치 좋은 데 가서 멍때리고 오자며 나가자고 했다. “당신 지금 멍때릴 필요가 있어 보여”라며. 실제로 나는 요즘 너무 여러 종류의 일들을 처리하고 고민하느라 정신적으로 무척 지쳐 있는데 그걸 알아차려 그렇게 말해 주니 무척 고마웠다. 호숫가에 있는 카페에 앉아 한가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말없이 비를 바라보기도 하며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새롭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전에는 아주 작은 일 때문에 실망하고 서운한 마음이 되어 싸우거나 침묵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는 나만 희생하고 사는 것 같고 남편은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 넷 키우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남편은 좋아하는 운동도 하고 매일 술 마시느라 늦게 들어와 집안일은 뒷전이라고 생각하니 남편이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밖에서 일하느라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운동도 해야 하고 사람들 만나 풀어야 하는데 그런 자신에 대한 배려는 없이 원망 어린 눈초리로 대하니 늘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이 불편했고 나에 대한 서운한 마음이 자주 들었을 것이다.
부부 사이가 좋을 때는 상대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에 대해 고마워하는데, 사이가 안 좋을 때는 내가 해 준 것이 먼저 생각나고 상대는 나에게 해 준 것이 없다고 생각해 원망이 쌓이게 된다.
남편은 전에 나에게 “당신은 왜 나에게 묻지를 않아? 내가 어떤지, 괜찮은지?”하며 서운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다. 그 바람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루카 6,31)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배우자에게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채워 주려고 하는 마음과 배우자의 아주 작은 배려를 알아차리고 고마워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마음이 서로 만나면 사랑이 자라고 행복이 커진다. 가끔 선배 부부들을 만나면 서로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고 배우자의 존재 자체를 고마워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과연 우리 부부도 저렇게 나이 들 수 있을까 하며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 부부는 왜 이렇게 다를까? 아무리 해도 우리는 안 되나 봐’하며 낙심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이가 훌쩍 자란 것을 깨닫고 놀라며 기특해하듯 우리 부부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실망과 원망에 머무르지 않고 매 순간 사랑하기로 결심하며 살아온 덕분이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