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가정 안에서 사춘기 자녀와 중년기 부모 충돌
발행일 2021-06-20[제3250호, 13면]
“저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는 신앙생활, 가정생활 모든 면에서 제가 잔소리할 것도 없는 성실한 아이였는데…, 요즘은 매일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에요. 잘 모르는 친구들과 다니면서 학원을 빼먹고, 귀가 시간도 제멋대로에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열심하던 복사단도 그만두겠다고 하더니, 성당도 안 나가고…. 사춘기가 와버린 이 아이가 저와 또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근심과 걱정, 복닥거림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아 내면이 난리를 겪는 자녀를 마주하는 것도 어려운데, 부모 자신도 중년을 겪어내기까지 해야 하는 이중고에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한 인간의 발달과정에 있어서 사춘기와 중년기는 삶의 큰 변곡점이기에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변화에 따른 긴장과 내면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긴장과 혼란은 쉽게 둘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사춘기의 자녀와 중년기의 부모가 갈등을 빚게 되는 영역을 다음의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체성과 관련된 갈등입니다. 사춘기의 자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숙제를, 중년기의 부모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숙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부모와 자녀는 서로 다른 숙제의 답을 찾기 위해 각자 인생 어느 때보다 많은 고민을 하고, 내면에서 극도의 긴장을 느낍니다. 그렇게 각자가 가진 첨예한 긴장감은 쉽게 둘 사이의 갈등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두 번째는 몸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갈등입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신체의 급격한 성장과 변화 속에서 자신들이 누구보다 젊고, 건강하고, 강하다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자신의 신체를 맹신해 음주, 흡연, 게임에 몰두하거나, 부적절한 성관계 등을 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발생할 신체적 희생과 대가에 대해서도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행동해 부모님들을 걱정하게 만듭니다. 반면 중년의 부모들은 노화가 시작되고 건강과 체력의 한계를 체감하면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의 중요성을 자녀들에게 강조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신체에 대해 서로가 느끼는 인식이 달라지면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갈등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독립과 관련된 갈등입니다. 사춘기 자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부모로부터 독립하기를 갈망하고, 부모와 연결되어 있던 것들을 하나씩 끊어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부모들은 오히려 자녀들에게 더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밀어내고 떼어내려는 에너지와 당기려는 에너지는 충돌하고, 둘 사이는 자주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마지막은 친구와 가족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오는 갈등입니다. 이 시기 자녀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와 친밀감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보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마련하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오히려 가족의 친밀감과 소중함을 깨닫고 가족의식을 강화하고자 하는 욕구를 이전보다 더 크게 느낍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일상 안에서 잦은 갈등으로 이어집니다.
이렇듯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사춘기 자녀와 중년기 부모는 자주 충돌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튕겨 나가는 자녀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걱정되고 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갈등이 빚어내는 심리적 긴장 속에만 빠지다 보면 자녀를 갈등의 원인으로만 보게 되고 그 안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자녀의 모습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사춘기와 중년기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아프게 하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성장 과정을 지지하고 응원하며 기다릴 때, 자녀도 부모 자신도 자신이 내딛는 세계 위에 더욱 굳건히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갈등을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신뢰하며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 노력할 때, 지금은 나와 평행선을 달리는 듯한 자녀가 이전과는 다른 성숙한 사랑과 신뢰의 바탕 위에서 나와 함께 걸어갈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
마르코복음 1장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장면은 우리를 새로운 묵상으로 초대합니다. 잘 읽어보면 이 장면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광야로 나간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신 장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안전한 곳이 아닌, 험난한 시련의 장소로 내모셨을까요? 우리는 그 답을 광야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마침내 사명으로 나아가셨던 예수님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마르코복음 속 하느님의 모습은 사랑하는 아들을 내둘러 키우시는 짓궂으신 하느님입니다. 그러면서도 자비롭고 넓으신 눈으로 지켜보시는 하느님이시지요. 그런 하느님께서 참사랑으로 우리를 광야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적인 방황과 외적인 갈등을 겪으며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 죄와 하느님의 것 사이에서 유혹을 겪고 이겨내며 마침내 스스로 설 수 있게 될 것을 믿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년기와 자녀의 사춘기를 함께 겪고 계신 부모님들 모두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나온 광야의 시간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은총을 발견하며 앞으로 삶의 관문을 열어갈 자녀들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기다리면서 응원해주십시오. 저도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