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가톨릭교육성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 교육에서 젠더 문제에 관한 대화의 길을 향하여 -
머리말
1. 지금 우리가 교육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으며, 이는 사랑과 성(性)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특히 그러하다. 많은 곳에서 계획되고 실행되는 교과 과정은 “인간과 생명에 대해 중립적인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신앙과 올바른 이성에 반대되는 인간학을 반영하고 있다.”1) 인간학의 방향성 상실은 우리 문화 전반에 만연된 특징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가정 제도의 와해를 부추긴다. 이와 함께 남녀의 차이를 없애려는 경향을 불러일으켜, 남녀의 차이는 그저 역사적 문화적 상황의 산물로 제시된다.
2.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의 사명은 일반적으로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의 다양한 형태에서 야기된 도전 과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성과 여성의 본질적 차이와 상호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성에 따른 차이가 없는 사회를 꿈꾸며 가정의 인간학적 기초를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근본적으로 무시하는 차원의 인간 정체성과 정서적 친밀을 조장하는 교육 계획과 입법을 야기한다. 그 결과로 인간의 정체성은 개인의 선택이 되고, 또한 시간이 흐르면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2)
3. 분명 이 문제는 사랑에 대한 교육의 포괄적 지평과3) 별개의 것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목적에 부응하는 교육, 자신의 재능과 성별, 조상들의 전통과 문화에 알맞은 교육, 또한 동시에 진정한 지상의 평화와 일치를 증진하기 위하여 다른 민족들과 형제적 교류를 이루는 열린 교육”을 받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긍정적이고 신중한 성교육”4)이 제공되어야 한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이 주제와 관련된 몇 가지 성찰 사항을 성교육에 관한 지침인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5)에서 이미 제시하였다.
4.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관점에서 성(性)은 한 사람의 인성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요소이다. 성은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고, 또한 그가 다른 이와 소통하고 인간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며 실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성은 인성 발전과 인성 교육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실 한 사람이 생리적 심리적 영성적 차원에서 남자나 여자가 되게 하며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고 사회 적응을 크게 좌우하는 특징을 인간은 성(性)에서 받는다.”6) 성장 과정에서, “성의 이러한 상이성(相異性)은 상호 보완성을 이루며, 각자의 소명에 따라 하느님의 계획에 철저히 응답하도록 만들어 준다.”7) 이러한 관점에서, “사랑과 성에 대한 교육은 인격 전체를 고려하여야 하고, 따라서 생리적,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정신적 요소들의 통합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8)
5. 가톨릭교육성은 고유 권한으로, 이 문서에서 몇 가지 성찰 사항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러한 성찰들이 지침과 도움이 되어, 새로운 세대들의 교육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이 인간의 성에 관하여 가장 많이 논의되는 문제들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부름받은 인간의 보편적 소명에 비추어) 다룰 수 있기를 희망한다.9) 유념해야 할 방법론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가장 적합한 세 가지 원칙, 곧 경청, 이성적 사고, 제안을 바탕으로 한다. 실제로, 참으로 다양한 상황들을 이해하고 다른 이의 요구를 주의 깊게 경청할 때, 이성적으로 논의할 수 있고 신앙에 뿌리를 둔 그리스도교 교육을 준비할 수 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새로운 빛으로 밝혀 주고 인간의 소명 전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 주며, 따라서 참으로 인간적인 해결로 마음을 이끌어 준다.”10)
6. 교육에서 대화를 바탕으로 젠더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한편으로는 젠더 이데올로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에서 다루는 젠더에 관한 다양한 연구들 사이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지적하신 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 갈망에 대한 응답이라고 주장되는” 젠더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절대적 이념으로 내세우며 심지어 자녀 교육까지도 좌우하려는 것이기에”11) 대화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에서 남녀의 성별 차이가 삶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 시도하는 젠더에 관한 연구가 없지는 않다. 바로 이와 같은 종류의 연구와 관련하여 경청, 이성적 사고, 제안에 열려 있어야 한다.
7. 이러한 배경에서, 가톨릭교육성은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과 특히 가톨릭 학교 공동체들, 다른 학교들 안에서 일하며 그리스도교 생명관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 문서를 전하고자 한다. 부모, 학생, 학교 지도자와 직원, 주교, 신부, 남녀 수도자, 교회 운동, 평신도 단체, 다른 관련 단체들이 사용하도록 이 문서를 제공한다.
경청
개요
8. 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경청이다. 무엇보다도 최근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문화적 현상들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20세기에 새로운 인간학 전망들이 생겨났고 이와 함께 젠더에 대한 개념들이 처음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개념들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성적 차이에 관한 철저히 사회학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하였다. 실제로, 20세기 중반 즈음에, 인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조건들의 역할을 거듭 강조한 여러 연구들이 계속 발표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간의 성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성 정체성이 자연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사실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을 증명하려 하였다.
9. 이러한 학설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타고난 요소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요소들은 개인의 정체성에 앞서 존재하는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우리 모든 행동의 필수적인 근간을 이룬다. 그러한 이론들에 따르면, 대인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성별이나 출산을 떠나 오직 당사자들 사이의 애정이다. 성별이나 출산은 가정의 형성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그 구조와 목적이 부부의 주관적인 선호도에 달려 있지 않은) 가정 제도의 전형에서 벗어나, 순전히 계약적이고 자의적인 가정관을 옹호한다.
10. 시간이 흐르면서, 젠더 이론이 적용되는 분야가 확대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 젠더 이론은 남녀관계의 상호성과 보완성 그리고 성의 출산 목적을 고려하지 않고, 개인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더 나아가, 섹스(sex, 생물학적 성)와 젠더(gender, 사회적 성)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분리하고 젠더를 더욱 우선시하는 이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성에 따른 차이가 없는 사회”12)를 지향하는 인류 진화의 중요한 단계로 여겨졌다.
11. 이러한 문화적 맥락에서, 명백히 섹스와 젠더는 두 가지 다른 실재를 설명하고자 사용되기 때문에 더 이상 동의어나 혼용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섹스는 어떠한 사람이 (본래 여성과 남성의 이원성에서 나온) 두 가지 생물학적 분류 가운데에서 어디에 속하는지를 규정한다. 반면에, 젠더는 문화마다 성적 차이가 삶으로 나타나는 방식일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두 용어를 구분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섹스와 젠더를 분리시켜 버리는 데에 있다. 다양한 ‘성적 지향’의 구별이 이러한 분리에 근거한다. ‘성적 지향’은 더 이상 남녀의 성적 차이로 규정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데,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라고 여겨지는 개인이 이를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젠더 개념 자체가 개개인의 주관적인 사고방식에 달려 있다고 본다. 각 개인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과 이에 따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과는 다른 젠더를 선택할 수 있다(성전환).
12. 자연과 문화가 더욱더 상치되어가는 가운데에, 젠더 이론의 명제들은 극도로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하며 불안정한 성적 차원들을 가리키는 성 소수자(queer) 개념으로 수렴된다. 결국, 선험적으로 주어진 성적 정의에서 개인을 완전히 해방시킬 것과 지나치게 엄격해 보이는 분류들을 파기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성적 지향이든 개인이 스스로 동일시하는 젠더든, 경우에 따라 다양한 정도와 강도의 미묘한 차이만 만들어낼 것이다.
13. 또한 남녀 한 쌍의 이원성은 둘 이상의 개인들이 관계를 맺는 ‘다자연애’(polyamory) 개념과 상충된다. 이러한 이유로 관계들의 지속 기간과 구속력은 당사자의 변화무쌍한 욕망에 따라 유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는 모성과 부성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의 분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들은 이른바 ‘친족 관계’를 형성하며, 욕망이나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종종 한정된 기간을 특징으로 한다. 이 기간은 윤리적으로 유연할 수 있고 또는 명백한 상호 합의로 아무런 계획성 없이 결정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이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하고 각각의 애정 관계의 상황에 따라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14. 이는 자신의 젠더를 선택할 권리와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결합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진 혼인 형태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이러한 혼인을 가부장 사회의 잔재로 치부해 버린다. 개인이 자신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는 간섭을 최소화하여 관련된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부정적 차별로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심지어 물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바람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권리의 주장은 정치적 논쟁에서 정기적으로 언급되고 국제 문서와 그리고 국법에 포함되어 있다.
합의점
15. 그런데 젠더 연구들 안에서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함께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는 일부 입장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이러한 분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모든 부당한 차별의 표현들을 타파하려는 훌륭한 열망을 공유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는 모든 이가 공감하는 요구이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들에서는 무엇보다 이와 관련하여 지연과 실패가 있었음을 인정하며 교육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13) 실제로, 수 세기에 걸쳐 지속된 부당한 차별의 형태들은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로 교회 안에서조차 영향을 미쳐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고착화를 초래하였고,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존엄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진정한 메시지의 필수적이고 점진적인 토착화를 지연시켰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교적 의도를 가장하여 일종의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를 내세운다는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16. 또 다른 합의점은 개성과 다름을 지닌 모든 사람을 존중하도록 어린이와 젊은이를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장애, 인종, 종교, 성적 성향 등과 같은) 자신의 특성 때문에 집단 괴롭힘, 폭력, 비방이나 부당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정당하게 드러나는 모든 인간의 특성을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동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의식을 기르는 교육이 포함된다.
17. 또한 젠더에 관한 성찰에서 나타난 인간학적 이해는 여성성의 가치를 중심으로 더욱 긍정적으로 발전하였다. 예를 들어, 여성이 지닌 ‘타인을 위한 능력’은 상황의 전개를 더욱 현실적이고 성숙된 시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여성 안에서는, 흔히 개인과 사회의 실존에 치명적인 추상적인 것들과 반대되는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의식과 존중이 자라난다.”14) 이는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 시작하여” 인간관계와 영적 가치를 풍요롭게 하는 데에 기여한다. 이러한 까닭에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유치원, 학교, 대학교, 사회봉사 단체, 교회, 연합회, 운동 단체 등 다양한 ‘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에게 사회는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15)
18. 여성은 현실에 대한 독특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역경을 견디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유지시키며 끈질기게 미래를 내다보는”16) 역량을 지니고 있다. 그러하기에 “교육 사업이 요청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그들은 가장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데 앞장선다. 이러한 일을 통하여 여성들은 ‘정서적, 문화적, 영적 모성애’를 나타낸다. 이는 개인과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가치이다. 여기서 교육 사업, 특히 청소년 교육을 가장 우선하는 사도직 임무로 여기는 각 대륙의 많은 가톨릭 여성과 여자 수도 단체들의 증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17)
비평
19. 실제 삶의 상황에서 몇몇 유효한 비평들이 제시된다. 젠더 이론들은 (특히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젠더 이론들은) 탈자연화(denaturalisation)의 점진적 과정, 곧 본성에서 멀어져 전적으로 인간 주체의 감정에 따른 결정을 선택하는 경향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성 정체성과 가정에 대한 관점은 포스트모던 문화 측면의 특징인 ‘유동성’과 ‘가변성’에 따르게 된다. 흔히 포스트모던 문화는 감각과 욕구의 자유에 대한 그릇된 개념만을 토대로 삼는다. 곧 충동적 감정이 불러일으킨 순간적 욕망과 개인의의지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존재의 진리를 근간으로 하는 모든 것에 반대된다.
20. 이와 같은 이론들의 기본 전제는, 육체를 인간 의지에서 분리한 이분법적 인간학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여기서 육체는 무기력한 물질 상태로 축소되고, 인간의 의지는 육체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물리주의(physicalism)와 주의주의(voluntarism)의 이러한 결합으로 상대주의가 나온다. 상대주의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질적 위계질서나 목적 없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차별성이 없다. 이러한 모든 이론은, 가장 온건한 것에서부터 가장 급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으로 개인의 젠더는 생물학적 성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흐름은 결과적으로 먼저 상대주의에서 촉발된 문화적 이념적 혁신을, 그 다음으로 법적 혁신을 일으킨다. 그와 같은 신념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구체적 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21. 실제로 다양한 정체성들을 옹호하는 주장은 흔히 여러 다른 정체성들을 서로 완전히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각 정체성의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적 차이의 문제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사실, ‘무차별’이라는 포괄적 개념에는 흔히 남녀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과 자연적인 상호성을 부정하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그러한 제안은, 인간 존엄에 필요한 다름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축소시켜 버리는 성별 차이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타파하기는커녕, 성별 차이를 개인의 발전과 인간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만드는 절차와 관행을 제안함으로써, 단순히 성별 차이를 없애려는 것이다. 그러나 ‘중성’에 대한 환상은 성별이 구분된 인간의 존엄성도, 새 생명 출산에 대한 개인의 본성도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18) 따라서 가정의 인간학적 기초는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22.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남녀의 실질적인 생물학적 다름과는 근본적으로 단절된 개인의 정체성과 정서적 친밀함을 부추기는 교육 프로그램과 법적 추세로 이어진다. 인간의 정체성을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만연한 사고와 행동 방식에서 드러난다. 오늘날에는 “참된 자유를 다음과 같은 생각과 혼동하기 쉽다. 곧 사람들은 마치 자신 말고는 자기를 이끌어 주는 그 어떤 진리와 가치와 원칙이 없는 것처럼, 또한 모든 것은 매한가지로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듯이 자기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19)
23. 인간에 대한 교회의 관점을 밝히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루는 인간은 그 육체적 조건을 통하여 물질 세계의 요소들을 자기 자신 안에 모으고 있다. 이렇게 물질 세계는 인간을 통하여 그 정점에 이르며 창조주께 소리 높여 자유로운 찬미를 드린다.”20) 이러한 존엄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육체적 관심사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고 또 자신이 자연의 한 조각이거나 인간 사회의 한 무명 요소일 수만은 없다고 여겨도 속는 것은 아니다.”21) 그러므로 “‘자연의 질서’와 ‘생물학적 질서’라는 표현들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거나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생물학적 질서’는, 자연 과학의 경험적 서술적 방법으로 접근 가능할 때에만 자연 질서와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연 질서는 제일 원인이신 창조주 하느님과 이루는 분명한 관계 안에 머무는 존재의 특별한 질서이니만큼 더 이상 생물학적 질서가 아니다.22)
이성적 사고
이성적 논거들
24. 우리는 젠더 문제의 역사적 개관과 합의점들과 비평을 살펴보면서, 이제 이 사안에 대하여 이성의 빛으로 몇 가지 고찰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개인의 정체성과 가족 관계를 통합하는 요소로서 몸의 중심성을 밝혀 주는 이성적 논거들이 있다. 몸은 존재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주체이다.23)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생물학과 의학 자료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자료에 따르면 ‘성적 이형성’(性的 二形性, 남녀의 성적 차이)은 유전학, 내분비학, 신경학과 같은 과학 분야에서 밝혀질 수 있다. 유전학 관점에서 보면 (XY 염색체를 지닌) 남성의 세포들은 (XX 염색체를 지닌) 여성의 세포들과는 임신되는 순간부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성별이 불명확한 경우에 의학 전문가들은 치료적 개입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특수 상황에서,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들 또한 그 사안에 관하여 자의적 선택을 할 수 없다. 대신에 의학은 전적으로 치료 목적으로, 곧 객관적 지표에 근거하고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최소한의 외과적 방식으로 개입하여야 한다.
25. 이른바 ‘중성’ 또는 ‘제3의 성’이라는 허구적 구조가 성 정체성 확립 과정을 더욱 방해한다. 이는 한 개인의 성별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조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흐려지게 만든다. ‘간성’(intersex, 間性) 또는 ‘성전환’(transgender)이라는 개념처럼 남녀를 구성하는 성적 차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호함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모순적이게도 자신들이 부정하거나 대체하려는 바로 그 성적 차이를 전제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을 오고가는 이러한 시도들은 결국 이른바 ‘전통적 도식들’에 반대하는 ‘도발적’ 표현만 될 뿐이고, 실제로 성이 불명확한 상황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들은 ‘본성’(다시 말해,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와 행동에 앞서는 토대로서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무효화하려는 목적을 지니지만, 오히려 실제로는 본성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재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26.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도 남녀의 성적 차이는 인간 정체성의 구성요소임이 증명된다. 그리스 로마 철학에서는, 본질(essence)을 인간 개인의 통일성 안에서 남-녀의 차이를 재정립하고 조화시키는 초월적 요소로 제시한다. 해석학과 현상학 전통에서는 상징과 은유를 통하여 성의 구별과 보완을 둘 다 설명한다. (‘남성-여성’의 이원적인) 수평 차원의 관계로든 (‘남성-여성-하느님’의 삼원적인) 수직 차원의 관계로든, 관계 안에서 성적 차이는 개인 정체성의 구성요소로 여겨진다. 이는 대인관계적 남녀 관계(나-너)에도 적용되고, 가족 관계(나-너-우리)에도 적용된다.
27. 정체성의 형성은 그 자체가 타자성을 바탕으로 한다. 곧, 나와는 다른 ‘너’를 직접 만남으로써 ‘나’의 본질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다름은 정체성의 인식은 물론 인식 전반의 조건이다. 가족 안에서 부모와의 관계를 통하여 자녀는 훨씬 수월하게 자신의 고유한 성 정체성과 성적 차이를 정립해 나간다. 정신분석학 이론이 증명하는 부, 모, 자녀 관계의 삼원적 가치는, 성적 다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상승 작용과 대비를 통해서만 성 정체성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8. 남녀의 성 차이에 바탕을 둔 생리적 상호보완성은 출산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보장해 준다. 반면에, 생식 기술에 의존하여 동성 결합 관계의 일방은 ‘시험관 시술’과 대리모를 통하여 자손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식 기술의 사용은 자연 임신을 대신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인간 배아의 조작, 부성과 모성의 파괴, 인간 육체의 도구화와 상업화, 아기를 과학 기술의 대상으로만 축소하는 것이 수반되기 때문이다.24)
29. 이 문제는 특히 교육계와 관련을 맺고 있다. 교육은 바로 그 본성상, 평화로운 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사람들이나 사상들 사이에 유익한 만남을 증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초월의 차원으로 이성을 확장하려는 전망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신앙과 이성의 대화가 “무미건조한 지적 수련으로 축소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이는 인간의 구체적인 현 상황에서 시작해야 하고 이 상황에 관하여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진리에 바탕을 두고 성찰해 나가야 한다.”25) 이러한 차원에서 모든 사람에 대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이 수행되는 것이다.
제안
그리스도교 인간학
30. 어머니요 스승인 교회는 그저 귀를 기울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근본 사명에 깊게 뿌리내리고 언제나 이성의 기여를 인정하면서 인간 공동체에 봉사하고 삶의 길을 제시한다. 성과 사랑의 의미에 토대가 되는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인간학이 없다면, 분명 우리는 인간이 자기 증여의 소명이라는 맥락에서 성 정체성을 온전히 실현하도록 이끌면서 인간의 참본성에 맞갖은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없다. 이러한 인간학적 조명의 첫 단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는 데에 있다. “사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마음대로 조작될 수 없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26) 이러한 인식이 바로 “인간 고유의 존엄성의 존중” 그리고 우리 삶이 “우리 본성에 새겨진 도덕률”27)과 맺는 필연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인간 생태학을 이루는 바탕이다.
31.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창세기에 드러난 인간 기원 이야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이 말씀에는 창조의 본질뿐만 아니라 생명을 주는 남녀 관계의 본질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를 통하여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과 내밀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 자아와 타아는 저마다 지니는 특별한 정체성에 따라 서로를 완전하게 해 준다. 또한 자아와 타아의 만남 안에서 창조주께서 주셨으며 지켜 주시는 역동적인 상호성이 이루어진다.
32. 성경 말씀은 창조주의 지혜로우신 계획을 드러내 보여 준다. 이로써 창조주께서는 “사람에게 돌볼 책무로서 자신의 몸, 곧 남성성과 여성성을 맡기셨다. 어떤 의미로는 이러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하여 인류와 인간 개인의 존엄, 개인들 사이의 ‘친교’에 대한 명확한 표지도 하나의 책무로서 사람에게 맡기셨다. 이러한 친교 안에서 사람은 자신을 참으로 내어 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실현한다.”28) 따라서 모든 물리주의나 자연주의를 뛰어넘어,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을 이해해야 한다.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에는 “인간의 영적이고 생물학적인 경향과 함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여타의 특성들이 모두 포함되기”29) 때문이다.
33. 이러한 “통일된 전체”30)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인 수직적 차원과, 남자와 여자가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개인들의 친교인 수평적 차원이 통합을 이룬다.31) 한 사람의 인간 정체성의 진정한 성장은 참으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열어 주는 순간에 이루어진다. 바로 “남성 또는 여성이라는 존재 방식은 단지 생물학적 또는 유전자적 요소들의 결과가 아니라 성격, 가족력, 문화, 과거의 체험, 받은 교육, 친구와 가족과 존경하는 이의 영향, 적응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다른 구체적인 상황들과 관련된다는 사실”32) 때문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타인과 함께여야만 자기 자신이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너’와 ‘너희’가 있어야만 나 자신이 되며, 함께 대화를 나누고 공간적 시간적 친교를 나누도록 창조되었다. ‘나’를 여는 것은 ‘너’와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33)
34. 성적 차이의 형이상학적 뿌리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곧, 실제로 남성과 여성은 인간 개인의 존재론적 실재를 표현하고 성취하는 두 가지 양상임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것이 가족을 탄생시키는 남녀의 이원성을 부정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인간학적 반박이다. 이러한 이원성에 대한 부정은, 인간 존재를 창조 활동의 결실로 바라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본성을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 개인이라는 추상적인 인간관을 만들어 낸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보완하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논쟁이 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창조 때에 남성과 여성의 이원성이 미리 안배되지 않았다면, 가정도 더 이상 창조로 예정된 실재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그 자녀도 자신의 보금자리와 존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34)
35.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성과 사랑에 관한 교육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모든 근원적 진리 안에서 “인내와 끈기로 육체의 본질적 의미를”35)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우리 몸을 받아들이며 돌보고 그 의미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또한 자기 “몸의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성을 만나면서 자신을 인식하는 데에 필요하다. 이렇게 하여 …… 서로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36) 따라서 온전히 인간적이고 통합적인 생태론에 비추어, 남성과 여성은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관계와 소통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성과 출산의 참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목적은 그들의 육체적 본질을 알게 하여 이성을 향하여 서로 나아가게 한다.
가정
36. 가정은 남녀가 상호성과 친교의 관계를 온전히 실현하는 자연스러운 자리이다. 바로 가정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자유롭고 온전한 인식으로 부부애의 계약을 맺어 결합을 이루어, “전체성 곧 인격 전체의 모든 부분 – 육체와 본능의 요구, 감정과 애정의 힘, 정신과 의지의 소망”37)을 실현한다. 가정은 “인간학적 실재이며 그러하기에 사회적 문화적 실재”이다. 한편, “역사의 한순간에 득세하다 사그라드는 이념적 개념들로 가정을 특징짓는 것”38)은 가정의 참다운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다. 남녀의 상호성과 보완성이 온전히 실현되는 자연 사회인 가정은 국가의 사회 정치적 질서보다도 앞서는 것이다. 국가의 자유로운 입법 활동에서 이 점을 고려하고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37. 이성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가정의 본성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두 가지 근본 권리는 언제나 보장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첫 번째 권리는 가정이 자녀 교육을 위한 첫째가는 교육 환경으로 인정받아야 할 권리이다. 이러한 “제1차적인 권리”는 더욱 구체적으로는 “사랑과 상호 증여에 관한 교육의 틀 안에서”39) 성과 사랑에 관한 교육을 비롯하여 “자녀의 인격적 사회적 전인 교육”40)의 책임을 맡은 부모의 “가장 중대한 의무”41)라고 표현된다. 이는 교육에 대한 권리이자 의무로서, “인간 생명의 전달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것이다. 부모의 교육 권리와 의무는 부모와 자녀 간의 특유한 사랑의 관계 때문에, 타인들의 교육 역할과 비교해 볼 때에, 본래적이고 일차적이다. 그것은 대치되거나 양도될 수도 없는 것이므로, 타인이 완전히 위임받거나 빼앗을 수도 없다.”42)
38. 마찬가지로 중요한 또 다른 권리는 자녀가 누리는 권리이다. 곧, “성장과 정서적 성숙에 알맞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가정 안에서 자라날” 자녀의 권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대하며 지속적으로 관계를 기르고 심화해 나가며 정서적 성숙을 준비해 나갈”43) 자녀의 권리이다. 자녀는 바로 가정의 보금자리 안에서 양성(兩性)의 생물학적, 기능적, 심리적, 사회적 차이와 동등성과 상호성이 지니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녀는 “인간의 성을 일상적인 것으로 끌어내리는 문화 안에 살고 있고, 이 문화는 인간의 성을 단지 육체와 이기적 쾌락에만 연관시키면서 축소되고 빈약한 양식으로 성을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교육 활동은 성 문제에 있어서 진정으로 완전한 인격적 훈련을 꿋꿋하게 지향해야 한다. 성은 전체 인간을, 곧 육체와 감성과 영혼을 풍부하게 하며, 인간을 사랑의 선물로 만드는 데에서 그 가장 심오한 의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44) 자녀의 이러한 권리들은 인간의 다른 기본권들, 특히 사상과 양심과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와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이러한 조화로운 공존이 이루어지는 자리에서 교육 종사자들은 모든 이를 유익하게 하는 협력을 모색할 수 있다.
학교
39. 자녀 교육에서 가정의 첫째가는 역할은 학교의 보조적 역할로 보완된다. 복음에 뿌리내려 굳건해진 “가톨릭 학교는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교가 되고자 한다. ‘물질적 영적 욕구를 가진 모든 인간 존재는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이다. 따라서 인간의 진보가 가톨릭 학교의 목표이다.’ 인간이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지극히 중요한 관계를 강조하는 이 선언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인간에 관한 충만한 진리를 발견하여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가톨릭 학교는 교회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 인간의 가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 충만함과 일치를 발견한다는 것을 인식하여 완전한 인간 발전에 투신한다. 이러한 인식은 가톨릭 학교의 교육 계획이 인간 중심이라는 것을 나타낸다.”45)
40. 가톨릭 학교는 개인이 그 안에서 대화의 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대화의 관계를 통하여, 개인은 건실한 소통을 하고 다른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서로 다른 시각을 이해하고 진정한 화합의 분위기에서 신뢰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한 학교는 참으로 “차이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자리인 교육 공동체이다. 학교 공동체는 만남의 자리로 참여를 촉진하는 자리이다. 학교 공동체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속한 첫 공동체인 가정과 대화를 나눈다. 학교는 가정의 문화를 존중하여야 하며, 가정이 찾는 요구와 학교에 대한 기대에도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46) 이러한 방식으로, 청소년은 공동체의 동반과 가르침으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라는 자신의 특별한 사명을 신앙의 빛으로 발견하는”47)
41. 비가톨릭 학교에서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교육자들도 인간에 대한 진리를 증언하고 그 증진을 위하여 봉사하고 있다. 사실, “교육의 목적인 전인적 양성은 직업 생활의 준비, 사회의식과 윤리의식의 형성,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인식, 종교 교육과 더불어 학생들의 모든 인간적 자질을 계발하는 것을 의미한다.”48) 직업의식을 지닌 교육자들의 개인적 증언은 이러한 목표들을 성취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다.
42. 정서 교육에는 신중하고 적절한 언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청소년들이 아직 온전한 성숙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흥미진진하게 삶의 모든 측면을 체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넘치는 견해들, 통제를 벗어난 포르노, 성을 훼손할 수 있는 지나친 자극들에 맞서 비판적 사고를”49) 키워 나갈 수 있게 도울 필요가 있다. 정서적 혼란을 야기하고 관계 심리적 성숙을 가로막아 버리면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애매모호한 정보들 앞에서, 젊은이들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식별하고 추구하며, 사랑에 대한 그들의 능력에 손상을 주는 것들은 피할 수 있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50)
사회
43.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총체적 시각이 교육 과정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사회관계와 대인 관계의 변화는 “자주 ‘자유의 기치’를 올리곤 하였지만,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가장 가난하고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 영적 물질적 황폐함을 안겨다 주었다. 혼인 문화의 쇠퇴가 빈곤 증대와 그밖에 서로 다른 수많은 사회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욱더 자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제들은 주로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이들도 언제나 어린이, 여성, 노인이다.”51)
44. 이러한 까닭에, 가정이 교육의 도전 과제들에 홀로 대처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열린 공동체, 환대하는 공동체 안에서 가정과 젊은이를 계속 뒷받침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 공동체는,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고 보완하는 것이지만, 교육에서 특히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받았다.52) 교육의 당면 과제들에 시급히 대처해야 할 필요성은 오늘날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교육 협력을 되살리도록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45.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이러한 교육 협력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따라서 관료적 수준의 협력이 아닌 근본적 협력의 증진, 곧 “긍정적이고 신중한 성교육”53)을 위한 공동 계획에서 부모의 일차적 책임과 교사들의 임무를 조화시키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투명한 교육 분위기 조성을 위하여, 다양한 교육 주체들 사이에 건설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들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참여를 최대한 촉진하고, 명확한 설명이나 정보나 역량의 부족으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무익한 긴장을 피하면서, 모든 교육 당사자가 상호 소통을 통하여 교육 활동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46. 이러한 협력에서 교육 활동은 보조성의 원리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 과정에 대한 다른 모든 참가자는 부모를 대리하여 부모의 동의 아래 어느 정도 부모의 인가를 받아 그들의 책임을 이행할”54) 수 있을 뿐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잘 협력하여, 각 개인의 고유한 정서적 성적 성숙 단계만이 아니라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을 목표로 하는 정서 교육과 성교육 프로그램들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생리적 심리적 특수성뿐만 아니라 신경 인지적 측면에서 그들 개개인의 성장과 성숙 단계들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그들을 동반할 수 있을 것이다.
양성자 양성
47. 모든 양성자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교육 계획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양성자의 성숙한 인격과 잘 준비된 소양과 균형 잡힌 성품은 학생들에게 커다란 긍정적 영향을 준다.55) 따라서 양성자들을 양성할 때에, 전문적 자질뿐만 아니라 문화적 영성적 측면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성 교육은 특히 성장기에는 각별한 관심과 지속적인 쇄신이 필요하다. 기본적 훈육만 단순히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드높고 도전적인 목표들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에 동행하고,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보여 주며, 서로 간에 그리고 세상과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그들의 참여와 관계를 증진할”56) 수 있어야 한다.
48. 학교 운영진과 교직원이 맡은 책임은, 교육 계획의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교 원리들에 맞갖은 양질의 서비스를 보장하는 것이고, 또한 사려 깊고 객관적이며 신중하게 행동하는 일상의 증언을 통하여 시대의 도전 과제들을 해석하는 것이다.57) 실제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감하듯,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는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58) 따라서 교육자의 권위는 “생명에 대한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념과 그러한 개념을 실현하려는 꾸준한 노력에 기초를 둔 전반적인 양성”이 실질적인 합일을 이룰 때 세워진다. “그러한 양성은 단순히 개인에게 필요한 직업 훈련을 뛰어넘어,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측면들을 포함한 인격의 한층 더 내밀한 측면을 지향하는 것이다.”59)
49.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이루어지는 양성자 양성의 목표는 개별 교사들을 양성하려는 것만이 아니라, 양성에 관련된 모든 이들 사이에 교수법과 정서적 차원을 다 아우르는 유익한 교류가 이루어지는 교육 공동체를 건설하고 더욱 공고히 하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교육자들 사이에 활기찬 관계가 형성되고, 전인적 성장이 더 풍성한 직업적 발전으로 이어질 때, 가르치는 일은 인간화를 위한 봉사가 된다. 따라서 가톨릭 교육자들은 젠더 문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하여 숙지하고, 자기 나라의 현행법과 법안들에 대하여 균형 잡힌 대화를 통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충분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대학교 수준의 교육 기관들과 연구소들도 교육자들이 적합하고 시의적절한 평생 교육을 받을 수 있게 고유의 구체적 기여를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50. 인간적 사랑에 대한 교육의 특별한 임무는 “심리학, 교육학, 교수법의 진보를 고려하여”60)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양성자들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학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특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적합하고 엄격한 정신 교육학적 훈련을”61) 받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 도입되는 교육 방법은 점차 이 까다로운 교육을 성공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조건이 될 뿐만 아니라, 책임을 담당한 여러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느냐 마느냐 하는 조건도 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명확한 관찰이 필요하다.”62)
51. 가르치는 행위의 자율성과 자유는 오늘날 많은 법률 체제 안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들은 성교육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가톨릭 고등 교육 기관들과 협력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관점”63)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 자료, 교육학 지침, 교안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육학자들과 교수법 교사들과 아동 청소년 문학 전문가들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수단들을 제공하여, 남자와 여자에 대한 왜곡되고 편중된 시각에 맞서 영유아기부터 견실한 전인 교육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다. 교육 협력의 쇄신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과 국가와 국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 책임자의 상호 협력은, 단지 생각의 공유나 좋은 관행의 유익한 나눔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교육자들 자신의 평생 교육을 위해서도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결론
52. 결론적으로, -경청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제안하는- 대화의 길은 더 인간다운 열린 관계망을 증진하는 데에 그 자체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일 뿐만 아니라, 불안이나 몰이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가장 효과적인 여정으로 보인다. 반면에, 민감한 젠더 문제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접근 방식은, 다양성 존중에 대한 표명은 되겠지만, 실제로는 다름 그 자체를 고착화시켜 버리고 결국 고립과 단절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53. 그리스도교 교육의 제안은 그 목적에 맞갖게 더 깊은 대화를 장려한다. 그리스도교 교육의 목적은 바로 “인간의 전 존재, 육화(肉化)한 정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본성과 풍요롭게 하시는 은총 등을 발전시키고 증진시킴으로써 남자와 여자로서 자기실현을 촉진시켜 주려는 것이다.”64) 이를 위해서는, 다른 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진심 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버리는 문화’와 고립의 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모든 남자와 여자가 지니는 본연의 존엄은 그 어떠한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도 빼앗거나 침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65) 거듭 밝힌다.
54. 가톨릭 교육자들은 -복음에 기초한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따라- 모든 이념적 환원주의 또는 획일적 상대주의를 뛰어넘어, 시대의 도전들을 기회로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가도록 부름받고 있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언행의 일치를 보여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경청과 이성적 사고와 그리스도교 제안의 길을 따라야 한다.66) 양성자들은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사랑의 표현, 상호 배려, 존중이 넘치는 온유함, 풍부한 의미가 있는 의사소통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매력적인 교육 사명을 맡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만인 앞에서 서약을 하고 나서 자신의 몸을 내주는 형태로 표현되는 온전하고 관대한 자기 증여에 대한 준비이다. 그래서 혼인에서 성적 결합은 모든 약속의 표징으로 나타날 것이며, 앞서 걸어온 길이 이 결합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67)
55. 이러한 대화의 문화는 가톨릭 학교들의 정당한 열망과 상치되는 것이 아니다. 가톨릭 학교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가정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인간의 성에 관한 그들 학교의 고유한 시각을 유지하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가정은,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차원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전인적 인간학에 바탕을 두고 자녀 교육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 국가는 여러 교육적 제안을 하나의 획일적 사고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는 인간 본성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과 연관되고,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인간 존엄성에 맞갖은 교육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부모의 자연스러운 권리와 연관되는 매우 민감한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따라서 모든 학교 제도는 체계적인 조직과 교육 프로그램들을 갖추어 부모의 이러한 권리가 온전히 실질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교육학의 제안은 세분화와 일시성을 내세우는 인간학에 확고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56. 가톨릭 교육 센터들은 성과 사랑에 대한 양성 프로그램을 제공할 때 학생들의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하고 개개인을 최대한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 이는 신중하고 주의 깊은 동반의 여정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여정을 통하여, 복합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다. 따라서 특히 시간과 식별이 필요한 그러한 사안들에서 모든 학교는 신뢰할 수 있고 평온하며 열린 환경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부당한 차별을 삼가고, 참을성과 이해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바람직한 여건들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57. 가톨릭교육성은, 학교에서 그리고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다양한 교육 활동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교육을 염려하며 날마다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가톨릭교육성은 이러한 교육 종사자들이 새로운 세대들을 양성하는 사명을 계속 이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자 한다. 특히 어떤 형태로든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 그리고 교육자들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일에 계속 헌신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요한 보스코 성인이 말한 대로, “젊은이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또한 가톨릭교육성은 가톨릭 학교나 다른 형태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따스한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을 독려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 교육자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나름의 삶의 역사,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지닌 한 명의 인격체, 한 형제자매라는 것을 알고 존중하는 열린 마음을 학생들에게 북돋워 주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그들을 둘러싼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열려 있으며 돌봄과 온유함의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양성하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 우리의 도전 과제이다.”68)
바티칸 시국
2019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장관 주세페 베르살디 추기경
차관 안젤로 빈첸초 차니 대주교
1) 베네딕토 16세, 교황청 주재 외교단에게 한 연설, 2011.1.10.
2) 프란치스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2016.3.19.,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6(제1판), 56항.
3)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1981.11.2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8(제3판), 6항; 요한 바오로 2세, 가정에 보내는 교황 교서 「가정 교서」(Gratissimam Sane), 1994.2.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8(제2판) 16항; 요한 바오로 2세, 수요 일반 알현 교리교육, 1981.4.8.,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Insegnamenti di Giovanni Paulo Ⅱ) 4,1(1981), 903-908면 참조.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교육의 중대성」(Gravissimum Educationis), 1965.10.28., 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글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7(제3판), 621면.
5)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Educational Guidance in Human Love, Outlines for Sex Education), 1983.11.1., 『생명과 가정』,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4(제1판), 738면.
6) 교황청 신앙교리성, 「성 윤리상의 특정 문제에 관한 선언」(Persona Humana, Declaration on Certain Questions Concerning Sexual Ethics), 1975.12.29., 1항, 『생명과 가정』, 2004(제1판), 723면.
7)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5항.
8)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35항.
9)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21-47항 참조. 여기에 성 역할에 대한 그리스도 시각이 정립되어 있다.
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965.12.7., 1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201면.
11) 「사랑의 기쁨」, 56항.
12) 「사랑의 기쁨」, 56항.
13) 프란치스코,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정기총회 참석자에게 한 연설, 2017.10.5., 참조.
14) 교황청 신앙교리성, 「교회와 세상 안에서 남녀의 협력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Letter to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on the Collaboration of Men and Women in the Church and in the World), 2004.5.31., 13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0호(200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1면, 수정 번역.
15) 성 요한 바오로 2세, 「여성들에게 보내는 교서」(Letter to Women), 1995.6.29., 9항, 『교회와 여성』,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2(제1판), 112면.
16) 「교회와 세상 안에서 남녀의 협력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13항.
17) 「여성들에게 보내는 교서」, 9항.
18)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정기총회 참석자에게 하신 연설, 3항 참조.
19) 「사랑의 기쁨」, 34항.
20) 사목 헌장 14항.
21) 사목 헌장 14항.
22) 카롤 보이티와, 『사랑과 책임』(Miłość i Odpowiedzialność), 폴란드, 1960.
23)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진리의 광채」(Veritatis Splendor), 1993.8.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9(제2판), 48항 참조.
24) 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 1987.2.22., 4항, 『생명과 가정 』, 204-205면 참조.
25) 베네딕토 16세, 제6차 유럽 대학 교수 심포지엄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로마, 2008.6.7.
26) 베네딕토 16세, 독일 사목 방문 동안 독일 연방 의회에서 한 연설, 베를린, 2011.9.22.
27) 프란치스코,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2015.5.24.,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5(제1판), 154-155항.
28) 성 요한 바오로 2세, 일반 알현에서 한 교리교육, 1981.4.8.,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 2,1, 1981, 904면.
29) 「진리의 광채」, 50항.
30) 「진리의 광채」, 50항.
31)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26항: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 안에 참여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피조물로서 자기를 실현하는 두 가지 양식이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개체적 인간으로서만이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인 부부로서도 그러한 소명을 완전히 성취한다. 부부 일치와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하여 혼인한 남녀는 하느님의 창조적 사랑에 참여하며, 다른 사람과 일치함으로써 하느님과도 일치하여 산다.”; 참조: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가톨릭 학교의 문화간 대화: 사랑의 문명을 위한 조화로운 삶」(Educating to Intercultural Dialogue in Catholic Schools: Living in Harmony for a Civilization of Love), 2013.10.28., 35-36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50호(2014), 92-93면.
32) 「사랑의 기쁨」, 286항.
33) 베네딕토 16세, 이탈리아 주교회의 총회에서 한 연설, 2010.5.27.
34) 베네딕토 16세, 교황청에서 한 연설, 2012.12.21.
35) 「사랑의 기쁨」, 151항.
36) 「찬미받으소서」, 155항.
37)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43항.
38) 프란치스코, 교황청 신앙교리성 주최 ‘남자와 여자의 상호보완성에 관한 국제 대회’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014.11.17., 3항.
39) 「사랑의 기쁨」, 280항.
40) 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3항.
41) 교회법 제1136조; 참조: 동방 교회법 제627조.
42) 「가정 공동체」, 36항.
43) 프란치스코, 국제가톨릭아동사무국 대표단에게 한 연설, 2014.4.11.
44) 「가정 공동체」, 37항.
45)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회람 「제삼천년기의 문턱에 서 있는 가톨릭 학교」(La Scuola Cattolica alle Soglie del Terzo Millennio), 1997.12.28., 9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 13호(2000), 199면 수정 번역.
46) 「가톨릭 학교의 문화 간 대화 교육: 사랑의 문명을 위한 조화로운 삶」, 58항.
47)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가톨릭 학교에 관한 지침」(The Catholic School), 1977.3.19., 45항, 『사목』 제57호(197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06면 수정 번역.
48)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학교 내의 가톨릭 평신도: 신앙의 증인들」(Lay Catholics in School: Witnesses to Faith), 1982.10.15., 17항. 『사목』 제88호(1982),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22면 수정 번역.
49) 「사랑의 기쁨」, 281항.
50) 「사랑의 기쁨」, 281항.
51) 교황청 신앙교리성 주최 ‘남자와 여자의 상호보완성에 관한 국제 대회’의 참석자들에게 한 연설, 2항.
52) 「사랑의 기쁨」, 84항 참조.
53) 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1항.
54) 「가정 교서」, 16항; 참조: 교황청 가정평의회, 가정 교육 지침 「인간의 성, 그 참모습과 참뜻」(Sessualità Umana: Verità e Significato. Orientamenti Educativi in Famiglia), 1995.12.8., 23항, 『생명과 가정』, 792면.
55)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79항 참조.
56)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교육의 현재와 미래. 쇄신된 열정”(Educatiing Today and Tomorrow. A Renewing Passion), 바티칸 시국 2014, 제2장, 7항.
57)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봉헌 생활자와 평신도의 공동 사명인 가톨릭 학교 교육」(Educating Together in Catholic Schools. A Shared Mission between Consecrated Persons and the Lay Faithful), 2007.9.8., 34-37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38호(2008), 211-212면 참조.
58) 성 바오로 6세,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12.8.,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06(제3판), 41항.
59)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80항 수정 번역.
60) 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1항.
61)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81항.
62)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83항.
63)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22항.
64) 성교육에 관한 지침 “인간적 사랑에 관한 교육 지침”, 21항.
65) 프란치스코, ‘인간 존엄성’ 연구소 대표단에게 한 연설, 2013.12.7.
66) 「가톨릭 학교의 문화 간 대화 교육: 사랑의 문명을 위한 조화로운 삶」, 결론 참조.
67) 「사랑의 기쁨」, 283항.
68) 프란치스코, 이탈리아 가톨릭 초등학교 교사 연합회에 한 연설, 20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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