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는 공공재입니다]
(13) 기후위기 시대의 그린뉴딜
발행일 2021-07-11 [제3253호, 7면]
영화 ‘기생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주인집이 캠핑 간 틈을 빌어 송강호네 가족은 그 집에서 술판을 벌인다. 그러나 장대비에 계획을 취소한 주인 가족이 돌아오고 송강호네 가족은 서스펜스 넘치는 탈출극 끝에 원래 살던 집을 향해 걷는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터널을 지나고 작은 폭포수를 이룬 계단을 내려간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동네와 집은 물에 잠겨 있다. 그들은 이재민이 되어 동네 체육관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신세가 된다. 반면 주인집 아들은 쏟아지는 빗속에도 캠핑 놀이를 하겠다며 마당의 텐트 속에서 놀고 젊은 부부는 전면 유리창을 통해 아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랑을 나눈다.
영화의 많은 장면들 중에 유독 이 장면이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 기후위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더 잦아지고 더 심각한 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폭우와 태풍, 폭염, 가뭄 등은 세계 곳곳에 비교적 고루 분포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피해는 가난한 나라들이 많은 남반구에 집중된다. 한 나라 안에서도 기후재앙은 가난하고 차별받는 이들에게 집중된다. 폭염 속에서 일해야만 하는 누군가는 픽픽 쓰러지겠지만 누군가는 에어컨 속에서 그 더위를 피해 간다. 폭우가 쏟아져 누군가는 집과 생명을 잃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폭우조차 호사롭게 즐길 여유가 주어진다. 기후재앙의 피해는 이처럼 편파적이다.
■ 기후재앙의 피해는 편파적이다
편파적인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엔환경계획이 작년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기온을 섭씨 1.5도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일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을 2.1톤으로 줄여야 한다. 2015년 현재 일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은 4.5톤인데, 전 세계 소득 하위 50%는 이미 2030년 목표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0.69톤만을 배출하고 있다. 이 수치는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상위 10%는 23.5톤, 상위 1%는 74톤, 상위 0.1%는 무려 216.7톤을 배출한다. 기후위기에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일수록 기후위기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은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원인 제공자와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자가 다르다는 기후부정의의 상황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기후위기 극복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더 많은 부를 가진 개인들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정작 자신의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바꾸려 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개인을 넘어 기업들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세계 100대 기업이 전체 온실가스의 71%를 배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업일수록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녹색 치장에 더 적극적이다.
한국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12% 가량을 배출하는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임을 내세우면서도 삼척에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지속가능한 저탄소 녹색미래를 위해 지금 행동합니다”라고 자랑하는 삼성 역시 강릉 안인 해변에 짓고 있는 화력발전소 둘로도 모자라 베트남 석탄발전소 건설에도 투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선도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SK 역시 해외 가스전 투자는 물론 국내 여러 곳에서 가스발전소도 운영하고 있다.
■ 기후정의의 법제화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이들이 기후위기를 해결해줄 것처럼 치켜세우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경제지를 보면 모 재벌 그룹이 그린뉴딜 바람을 타고 22개 회사를 신규 매입했다느니 대기업들이 정부 지원에 힘입어 신재생에너지로의 사업 확장에 나섰다느니 하는 기사들이 넘쳐난다. 지역균형발전을 말하며 나오는 정책들도 온통 기업들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것들뿐이다. 가덕도, 제주도, 새만금 신공항 등 토건 개발 사업도 줄을 잇는다. 아무리 친환경 사업이라 딱지를 붙여도 온실가스 배출은 늘어만 간다.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사이 다수는 더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피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기후부정의의 심화는 이처럼 기후위기의 악화와 쌍을 이룬다.
그러나 정부의 탄소중립 계획도,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 법안들도 기후부정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제안한 기후정의기본법은 이런 암담한 상황에 대한 응답이다. 기후정의기본법의 요체는 기후부정의가 지속되는 조건에서는 기후위기 극복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다. 대기업들이 지금까지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면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기후재앙으로 피해를 입을 시민들에게는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보호받을 권리와 함께 정책 설계에 참여할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생충’인 사회에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그렇기에 기후정의의 법제화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사회적 힘을 모으기 위한 첫걸음이며, 구조화된 불평등을 넘어 공동체성이 회복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기후정의의 목소리는 너무나 약하다. 더 많은 이들의 더 큰 목소리가 너무나 필요하다.
김선철 (기후정의활동가 ·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