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17>
아버지의 이름으로
발행일 2021-11-21 [제3270호, 13면]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저는 가족들이 깨기 전에 출근해서 잠든 후에야 귀가하기 때문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적은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의 생활 대부분을 아이 엄마가 도맡고 있지요. 제 입장에서는 그런 아내를 늘 믿고 지지해줬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와 아이는 제가 가정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더군요.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좀 더 노력하려는데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아이의 신앙에 있어서는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과 자녀들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의 삶은 참 고단한 삶입니다. 누군가의 아들로 보호를 받던 시절을 지나 이제 가족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 온몸으로 오롯이 세파를 견디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삶만큼 복된 삶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나’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과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들이 고단함을 이기며 하루를 살아내는 이유는 바로 그 웃음을 지켜가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고단함과 책임감에 파묻혀 이것을 잊게 되는 것이 문제이지요. 하지만 자녀들의 행복한 웃음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육적인 양육과 영적인 양육,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육적인 양육은 의식주를 부족함 없이 제공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양육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아이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이를 이끌어가실 하느님의 뜻을 신뢰하며 아이 또한 그 뜻을 자각하고 소명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많은 아버지들이 육적인 양육에 있어서는 그 책임을 잘 알고, 방법도 잘 찾아가지만, 영적인 양육에 있어서는 그것의 중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로서 이 두 가지 차원의 양육을 모두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역시 나자렛의 요셉의 가정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Patris Corde)에서 요셉 성인의 아버지로서의 7가지 모습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노동자의 수호성인인 요셉은 아시다시피 목수로 정직하게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노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요셉을 통해 예수님 또한 노동의 가치와 고귀함, 기쁨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아버지’인 요셉은 마리아의 신비로운 잉태 앞에서도,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할 때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도 하느님께서 꿈을 통해 일러주신 구원계획에 순종하며 어려움을 헤쳐 나갔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그 일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수용하는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수용하였다고 해서 수동적으로 굴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요셉은 성령께서 주시는 용기를 통해 굳건한 의지로 상황을 주도한 사람이었으며, 어려움을 마주한 순간에도 포기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창의적 용기를 지닌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여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갔습니다. 물론 그 또한 나약함을 가진 아버지였을 것이지만 ‘온유하고 다정한 아버지’인 요셉은 그 온유함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받아들였기에 하느님의 계획은 그의 두려움 안에서도 작용하였습니다.
요셉은 특별한 자유로써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극한 사랑을 가지셨기에 우리가 방황하거나 그분께 맞설 때조차 자유로이 두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같이 요셉은 예수님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으셨고, ‘그림자 속에 있는 아버지’로서 마리아와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셨습니다. 그렇게 요셉은 자신의 마음과 모든 능력을 그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메시아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을 보였기에 드러나 있지 않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랑받는 아버지’로 남아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요셉 성인의 면모를 통해 아버지들은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울 수 있고, 자녀들에게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자녀들에게도 요셉과 같은 부성,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지닌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어머니와 더불어 자녀들의 영육 간의 양육을 모두 살피며 하느님께로 초대하는 아버지가 있을 때 자녀들은 예수님과 같이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루카 2,52)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한 수녀님의 요셉 성인의 임종 장면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품에서 임종을 맞으며 남겼을지도 모르는 요셉 성인의 마지막 말씀 안에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았던 한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이 묵상이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들 예수님, 내 인생은 보잘것없는 인생이었지만 당신을 만나 내 삶은 행복했습니다. 때로는 삶이 고단하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지만 하느님은 저의 두려움과 약점, 나약함 안에서도 일하셨음을 깨닫습니다. 당신을 내게 보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