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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문 -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by 가정사목부 posted Dec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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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랑공동체 '베이비 박스'

2021-12-25 [제3275호, 6면]

 

서울 신림동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베이비박스’에는 이 시대 ‘아기 예수’들이 머무른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양육되지 못하고 가로 70㎝, 세로 45㎝, 높이 60㎝ 박스에 눕혀진 아기들. 여관에도 들지 못해 비천한 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과 같은 처지다. 주님 탄생 대축일을 맞아 베이비박스를 통해 이 시대 아기 예수님들을 돌보고 있는 (재)주사랑공동체를 찾았다.

#오전 7시40분, 한겨울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재)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건물 현관문을 열고 조금 계단을 오르자 왼편에는 아기방이, 오른편에는 상담실이 보였다. 왼쪽에 있는 아기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찬 바깥 공기와 달리 온기가 가득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4명 중 2명은 침대에, 1명은 목욕실에, 다른 1명은 목욕실 앞 간이침대 위에 있었다. 입양될 아기 둘과 당장은 부모가 키우지 못하지만, 두세 달 뒤 찾아오기로 하고 맡긴 아기 둘이었다. 이들을 한 명씩 따뜻한 물로 씻기던 이나래(체칠리아·26·서울 망우동본당) 보육사는 “베이비박스는 탯줄이 달려 위급 상황으로 온 핏덩이들도 사랑으로 보호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원가정이든 입양 가정이든 보육원이든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곳”이라며 “어떤 조건이든 아기들은 그 자체로 사랑받고 행복하게 자라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말했다.

#아기방 맞은편 상담실에서는 수시로 전화벨이 울렸다. 국내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 한부모 가정과 물품 지원 요청 내용으로 막 통화를 마친 류은민 상담사는 이후에도 계속 위기 임신·영아 보호 상담, 지원 요청과 후원·봉사 문의 전화 등을 받았다. “아기를 안전하게 구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베이비박스 보호 대상은 아기 엄마나 아빠, 부모 모두”라고 밝힌 류 상담사는 “그들이 얼마나 아기를 살리고 싶었는지, 주위에서 임신·출산으로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들으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류 상담사는 “그들이 아기를 양육할 때 받을 수 있는 도움들을 알려 주고, 직접 키우진 못하더라도 평생 짊어질지 모를 죄책감과 응어리를 상담으로 조금이라도 풀어 주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밝혔다.


■ 아기만이 아니라 그 부모도 돌보는 곳

2009년 12월 주사랑공동체가 만든 ‘베이비박스’는 돌봄을 받아야 할 부모에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아기들과 그 부모들을 위한 곳이다. 2007년 주사랑공동체 문 앞에 한 아빠가 갓난아기를 생선 박스에 넣어 놓고 갔다. 그때 이후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담임 목사는 위협받는 아기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담벼락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처음엔 아기를 안전하게 놓을 수 있는 공간만을 의미했던 베이비박스는 규모가 커지며 건물 전체를 칭하는 말이 됐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위기 영아 보호와 상담, 양육 지원 등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베이비박스 외에도 건물에는 부모가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잠시 쉴 수 있는 ‘베이비룸’, 갈 곳이 없는 아이와 부모가 지낼 수 있는 임시 숙소 등이 마련돼 있다. 이와 함께 주사랑공동체는 양육 미혼모 지원 사업을 통해 매달 평균 100여 가정에 기저귀 등을 제공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양육비와 의료비 등도 지원하고 있다.

베이비박스는 안팎으로 연결돼 누군가 아기를 박스에 내려놓으면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벨이 울린다. 그럴 때면 보육사는 재빨리 아기를 안에서 꺼내 안고, 상담사는 밖으로 나가 부모와 상담한다. 박스에는 아기가 안전하게 누울 수 있도록 침대와 보온 장치 등이 있다. 올해 12월 20일 기준 어린 생명 1932명이 베이비박스를 거쳤다.


■ 아기들은 그 자체로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는 존재

주사랑공동체가 부모가 키울 수 없는 아기들을 구하고 보호하는 이유는 그들 또한 그 자체로 사랑받아야 하고 또 사랑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제 주사랑공동체에서 도움을 받아 현재는 딸과 같이 살고 있는 미혼부 김지환 베이비박스 책임 팀장은 “아기는 존재 자체로 사랑”이라며 아기 엄마도 떠나고 부모에게도 도움받지 못하던 시절, 주사랑공동체는 자신이 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도움을 제공하고 지지·격려해 줬다고 밝혔다. 특히 김 팀장은 “베이비박스에 놓인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살았는데, 네다섯 살밖에 안 된 그 아이들이 제 딸을 누구보다 예뻐해 줬다”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그 아이들이 보여줬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결국 누군가를 배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기들이 또 다른 예수님 모습이고 그 아기들이 있는 곳이 천국과 같다”며 “아기 예수님들은 다 행복하고 안전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 5명 중 1명은 다시 원가정에서

이처럼 소중한 아기들은 부모 손에 자랄 수 없을 것 같지만, 다시 원가정에 돌아가 건강하게 자라는 일이 베이비박스에선 생기고 있다. 아기를 키울 수 없어 고민하던 부모들이 상담 후 아기를 키우겠다고 결심하는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베이비박스 문을 연 미혼부·모를 포함해 여러 부모들은 방문·전화·온라인 등으로 베이비박스에서 상담을 받았고, 현장을 찾는 이들 중 20%는 베이비박스에 맡겼던 아기를 되찾아갔다. 원가정에서 아기들이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데에 대해 주사랑공동체는 어떠한 편견도, 판단도 없이 그들을 대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선(先) 지원, 후(後) 행정 처리’하고 있다며 이는 ‘한국형 베이비박스’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아기를 안전히 놓는 베이비박스만 있지만, 한국형 베이비박스에서는 이에 더해 체계적인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고 있고, 그 방식이 아기를 부모가 직접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 베이비박스가 사라질 때까지

이토록 이 시대 아기 예수님들을 구하는 데에 열심인 베이비박스는 역설적으로 ‘베이비박스’가 필요 없는 세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모가 아기 생명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아기가 유기돼 목숨을 잃는 위험에 놓이지 않도록 생명 보호 장치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를 키워 베이비박스 아기는 0명이 되도록 끊임없이 생명 수호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는 의미다.

이종락 목사는 “예수님 사랑을 깨닫고 주님이 보내신 생명을 보호·사랑·존중·축하·축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기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 환경이 마련돼야 하고, 교회는 낙태 반대 운동 등을 거세게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고, 잉태된 아기들은 모두 태어나야 한다”고 역설한 이 목사는 무엇보다 “작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작은 예수를 사랑하는 길”이라며 절박한 상황에 있는 부모들에게 요청했다.


“화장실 등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지만, 베이비박스는 누구에게나 부모가 되어주고 친정이 되는 안전한 보호처예요. 극단적인 생각하지 마시고 여기로 오세요.”

※문의 02-854-4505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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