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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이야기]

99. 부부 사랑, 자녀를 위한 큰 자양분

2021.12.25 [제3275호, 18면]

지난 주일 저녁,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큰 아이가 낮에 가족 채팅방에 집안일 분배에 관한 회의를 하자는 제안을 해 가족 모두가 정해진 시간에 모인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고 생활시간이 각자 다르다보니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월요일부터 기말고사 기간인 막내가 참석하지 않겠다고 할까 걱정했는데 기꺼이 참석해서 끝까지 함께했다.

일곱 식구가 사는 우리 집은 식구가 많은 만큼 일이 많고 늘 어수선하다. 내가 치우고 정리하는 것에 특히 재능이 없어 깔끔한 집안 분위기를 원하는 예로니모와도 주로 이 문제로 갈등이 많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안은 더 어질러져 있고 어쩌다 예로니모가 치우면 “이건 누구 거냐? 누가 여기다 뒀냐?”하면서 가족들을 압박하니 차라리 내가 하고 말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예로니모는 그동안 여러 번 아이들에게 각자 일을 분담하게 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분담해 보긴 했지만, 몇 번 하고 흐지부지되기를 반복해 왔다. 자기 방도 정리하지 않는 아이들을 볼 때 나를 닮아서, 내가 잘못 가르쳐서 아이들이 저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안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지 못 하고 아이들 교육도 똑 부러지게 못 하는 무능한 주부이며 엄마라는 부정적 자아상을 가지게 되었고 예로니모와의 관계도 점점 불편해지게 되었다. 집안 정리나 아이들 훈육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지레 예민해져서 위축되거나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이게 되니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분위기가 냉랭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에게 이 주제는 대화하기를 꺼리는 주제가 되었고 점점 대화가 줄어들게 되었다.

부부 사이에 대화하기를 피하는 주제가 생기면 부부 관계는 급속도로 멀어지게 된다. 마음 안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쌓여 있는데 다른 이야기를 해도 대화는 겉돌고 서로에 대한 원망은 점점 커져만 간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대로 네 아이를 혼자서 키우는 나를 알아서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생겼지만, 도와 달라는 말을 꺼내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예로니모는 집안일을 도와주려고 좀 하다 보면 집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놓은 나와 아이들에 대해 화가 나고 짜증 섞인 말들이 튀어나오니 차라리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갈등이 깊어져 서로 체념하고 지내는 때에 ME 주말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집안 정리에 대한 주제는 둘 다 꺼내지 않다가 여러 주제에 관한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신뢰가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그 주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늘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주제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을 때 놀라운 기쁨과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우리는 대화하지 못할 주제가 없겠다고 하는 용기도 생겼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민감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니 부부 사이에 있던 벽은 얼음 녹듯 사라지게 되었고 설령 다시 불편한 상황이 오더라도 잘 풀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부부가 가장 어려워했던 주제로 가족회의를 열고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모든 가족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선호도와 형평성에 따라 골고루 집안일을 나눴다. 이제는 아빠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르도록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잘해 보겠다고 다짐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아이들을 보고 있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이들이 잘 자라 주어 고맙다.

예로니모는 가끔 “당신이 옳았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기 방식대로 아이들을 키웠다면 이렇게 좋은 인성의 아이들로 자라지 못했을 거라며 내가 아이들에게 너그럽고 충분한 사랑을 주며 키워서 아이들이 잘 자란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란 것은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서로 일치하려고 노력하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자양분이 되어 준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사이가 좋아서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부부는 ME를 통해 하느님이 우리 부부에게 마련해 주신 선물을 듬뿍 받고 있다.

※그동안 ‘생활 속 영성이야기’를 써주신 필진들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유경(헬레나·ME 한국협의회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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