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왜 조력자살을 비판했나?
발행일 2022.03.13 [제1653호]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죽을 권리란 건 없다”며 조력자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서구 여러 나라에서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등 상황은 좋지 않다. 현재 조력자살에 대한 여러 나라의 입법 실태, 국내 움직임,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한 대안은 없는지 살펴본다.
조력자살과 현행법
조력자살은 고통받는 환자가 의사나 간호사 등 외부인의 도움을 받아 자발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사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한다. 의사나 간호사가 약물을 직접 주입해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된다. ‘조력자살’은 적극적 안락사와 달리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조력자살은 촉탁살인으로 처벌 대상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사전에 본인의 작성한 의향서, 또는 보호자 동의를 전제로 의료인은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치료효과가 없는 연명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생명연장술이 오히려 환자에게 심한 고통을 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존엄사’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교회는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 집계 결과 이 법에 근거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통한 참여자는 지난 2월 4일 현재 119만 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9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생명은 하나의 권리이며 이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관리될 수 없는 것”이라며 “조력자살을, 죽음으로 이어지는 용납할 수 없는 일탈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죽음을 앞둔 사람과 함께해야 하지만 죽음을 유발하거나 자살을 돕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0년 9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안락사나 조력자살을 ‘살인 행위’로 규정하고 어떤 상황 또는 환경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력자살을 통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한 가톨릭 신자는 ‘병자성사’를 비롯한 마지막 예식을 받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교황의 발언은 신앙교리성 발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다만 교황은 불치병을 앓는 환자들의 고통을 완화해주는 치료를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이탈리아 의회가 최근 조력자살 합법화 관련 논의에 들어간 상황과 관계가 깊다. 현재 이탈리아 관련법은 타인의 극단적 선택을 돕거나 방조하면 최장 12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2019년 9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돕는 일이 항상 범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의회는 후속 입법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 조력자살에 대한 서구의 분위기는 찬성 쪽이다. 스위스가 1942년 처음으로 조력자살을 허용했고 2001년 네덜란드, 2002년 벨기에, 2009년 룩셈부르크가 합류했다. 이어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가 뒤를 이었고, 캐나다와 뉴질랜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일부 주도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조력자살의 실태
매년 조력자살을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국내에서 촉탁살인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을 보면 조력자살을 통해 목숨을 끊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광주고등법원은 2월 8일 촉탁살인 혐의로 기소된 A(47·여)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3월 19일 광주 자택에서 함께 살던 암 환자 여성 B(40)씨의 부탁을 받고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국내의 한 언론이 스위스의 조력자살 기관 ‘디그니타스’를 통해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보도를 보면 2012년부터 2017년 1월까지 이곳에서 죽음을 택한 독일인은 3223명, 한국인도 18명이나 있었다. 언론 보도 이후 조력자살을 합법화한 나라가 더 늘어난 만큼 조력자살을 통해 목숨을 끊는 사람은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조력자살은 미디어를 통해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였던 ‘윌’이 조력자살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그린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소설 모두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조력자살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대안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활성화, 그리고 가톨릭신자를 비롯한 국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호스피스 완환 의료 전문가인 서울성모병원 전 원장 홍영선(안드레아) 박사는 “조력자살은 적극적 안락사”라며 “최근 교황의 발언, 그리고 유럽 내 분위기와 움직임을 보면 우리나라도 조력자살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부 언론이나 의사들은 존엄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안락사를 부드럽게 묘사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유튜브 방송을 하는 등 영역을 넓히고 있다”며 “이는 안락사를 합법화시키려 하는 것”이라면서 “가장 좋은 대안은 호스피스 완화의료”라고 강조했다.
1981년 가톨릭중앙의료원에 호스피스 제도를 도입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이경식(바오로) 박사도 “호스피스에서는 의사가 통증을 조절해 주고 간호사와 상담사 등 다른 분들은 영적ㆍ육체적 보살핌과 위로를 해주면서 환자를 돌보게 된다”라며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에서 마지막 삶을 가족과 함께 아름답게 보내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정리하고 떠날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의사나 의료인들이 조력자살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인간 생명의 소중함, 존엄성에 대해 훈련하고 교육받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전문가 / 서울성모병원 전 원장 홍영선 박사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회장을 지낸 서울성모병원 전 원장 홍영선 박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조력자살, 그리고 안락사는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비판했다. “고통을 피하게 해준다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 조력자살은 호스피스와 전혀 다릅니다. 이는 생명 파괴행위요 살인 행위입니다. 그 행위가 고통받는 말기환자를 행복하게 하지도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지도 못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이 창조한 생명을 마음대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존엄사’라는 용어는 조력자살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존엄사라는 단어의 뜻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영어로 ‘dignified death’, ‘death with dignity’는 존엄적 안락사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이 말을 국제적으로 처음 사용한 곳은 미국 오리건주에 있는 안락사 찬성 집단입니다.
마지막으로 홍 박사는 “사회 모두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다져야 한다”며 조력자살과 존엄사에 대해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지난 2009년 김수환 추기경님이 서울성모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했습니다. 당시 추기경님의 생전 의사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일부 언론에서 김수환 추기경 존엄사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대교구에서는 ‘추기경님은 존엄사가 아니라 자연사다. 존엄사라고 왜곡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2018년부터 시행된 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을 일부에서는 존엄사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장차 이 법률을 토대로 대상만 확대하면 조력자살과 같은 안락사가 합법화될 소지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당연히 안락사와 의사조력 자살에 대한 대안이며 교회 내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적극적 교육과 홍보를 해야 할 때입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