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줍깅', 동네 한 바퀴"
발행일 2022-06-19 [제3299호, 20면]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작은 하천을 따라 양편으로 뻗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에는 주말이면 시민들이 건강을 위한 산책에 나선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김민주(65)씨도 이틀에 한 번꼴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운동복 차림에 한 손에 집게, 옆구리에는 비닐백을 차고 있다. “운동하러 오가면서 보니까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어서 줍기 시작했지요. 그러다보니 아예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고 다니면서 눈에 띄는 대로 줍는 게 습관이 됐어요.” 사람 손 많이 타지 않는 풀밭에서 쑥과 나물을 캐던 김씨가 풀들 사이에 버려진 플라스틱과 비닐 쓰레기, 담배꽁초 등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었다. 하다 보니 그냥 걷는 것보다 운동량도 많고, 다리와 허리에도 힘이 더 생겼다. 건강과 환경보호, 일거양득이다.
■ 건강, 조깅 위에 줍깅
김씨는 자기도 모르게 ‘줍깅’(plogging)의 선구자가 됐다. ‘줍깅’, 즉 ‘플로깅’은 스웨덴어의 ‘이삭을 줍다’는 의미의 ‘플로카 우프’(plocka up)와 영어 단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 지금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는 생활 속 환경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줍다’와 ‘조깅’을 합성한 ‘줍깅’으로 불린다.
김씨가 체험으로 안 것처럼 실제로도 줍깅은 단순한 조깅이나 걷기보다 더 효과적인 운동법이다. 조깅 또는 걷기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생활체육이다. 문화체육관광부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즐기는 생활체육이라고 응답한 것은 ‘걷기’로 절반에 가까운 49%를 차지했다. 등산(22.8%)과 체조(11.4%)가 뒤를 이었다.
줍깅은 조깅보다 칼로리 소모가 더 많다. 스웨덴 피트니스 앱 ‘라이프섬’(Lifesum)의 조사에 따르면, 30분 동안 조깅을 하면 235㎉가 소모되는데, 줍깅은 288㎉가 소모된다. 조깅에 비해 줍깅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허리를 굽혀 쓰레기를 들어 올리는 등 상체와 하체의 근력 운동을 고루 하게 된다. 운동 전문가들은 쓰레기 1개를 줍는 것은 스쿼트 1회, 또는 런지 1회를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 지구를 살리는 쉬운 방법
걷기가 가장 쉬운 운동이듯 줍깅은 지구를 살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에코백이나 종량제 봉투, 장갑과 집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천할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이 2020년 환경의 날을 기념해 전국 13개 지역, 215명의 시민과 함께 5월 31일 2시간 동안 생활 속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 분류해보니, 가장 많이 발견된 쓰레기는 담배꽁초로 절반(54%, 6488개)을 차지했다. 각종 비닐봉지와 포장지가 1965개로 2위, 일회용 종이컵이 655개로 3위,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654개로 4위였다.
줍깅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하는 환경 실천이지만 특히 MZ세대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젊은이들에게 생태환경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친환경적 삶은 일상적 관심사가 됐다. 그런 관심사가 가장 대중적으로 일상화된 것이 줍깅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MZ세대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특별히 건강과 놀이, 환경보호를 동시에 실천하는 줍깅을 자신들의 의미있는 문화로 공유한다.
■ 교회도 줍고 줍고
최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줍깅에 교회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강승수 요셉 신부)는 올해 1월 1일부터 갑천 국가습지 지정을 촉구하는 거리미사와 함께 갑천 일대에서 줍깅 행사를 매주 실시했다. 위원회는 4월 8일까지 총 13회에 걸친 미사를 통해 갑천을 자연하천구간 국가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줍깅을 통해 갑천 일대를 깔끔하게 단장했다.
대구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김호균 마르코 신부)는 환경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6월 4일 대구 도심 순교자 길을 따라 ‘줍깅토킹’ 행사를 진행했다. 교구 내 15개 본당과 2개 단체, 시민들이 참여한 이날 행사는 대구 대안성당에서 출발해 서문로와 주교좌계산성당, 관덕정, 성모당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환경보호와 순례, 토크를 접목해 펼쳐졌다.
대전교구 당진 신평본당(주임 이의현 베드로 신부)에서도 지난 5월 9일 줍깅에 나섰다. 신평성당에서 원머리성지까지 총 4㎞ 구간에서 성지순례와 환경보호를 겸한 줍깅을 실시했다.
■ 줍깅 바르게 실천하기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실천이지만 줍깅도 나름대로 꼼꼼한 준비와 사후처리가 요구된다. 걷거나 달리는 활동이므로 편안한 복장과 운동화는 필수다. 오염이 심하거나 손으로 줍기 어려운 쓰레기 처리를 위해서 집게가 필요하고, 유리 조각이나 쇠붙이에 다치지 않도록 목장갑, 그리고 주운 쓰레기를 담을 종량제 봉투를 갖춰야 한다. 또한 나름대로 적지 않은 활동과 몸쓰기를 해야 하기에 스트레칭을 포함한 적절한 사전 준비 운동도 필요하다.
줍깅 후 사후 처리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 쓰레기는 가져간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폐기하면 되지만, 재활용 쓰레기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분리배출을 해야 줍깅을 통한 환경보호 노력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줍깅 후 모아진 쓰레기를 분리 배출할 수 있는 수거함을 설치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 박영호 기자의 ‘줍깅’ 체험기
“깨끗한 거리 보니 가슴 뿌듯, 뱃살도 쏙”
쓰레기 줍기를 생활화하는 발랄한 환경보호, 줍깅을 체험해봤다. 평소 쓰레기 버리기를 생활화(?)했던 탓에 쓰레기 줍는 일은 번거롭고 계면쩍은 일이었다. 대부분 마찬가지라고 위안해본다.
평소 본 서울 거리는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전보다는 거리가 깨끗해진 듯했다…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으며, 다양한 환경보호 실천운동이 대중화됐지만 여전히 거리에는 주워야 할 쓰레기가 충분했다.
줍깅은 두 곳,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광진구 군자역 인근 길거리와 집 근처 의정부시 민락동 일대 산책로와 공원에서 이뤄졌다. 준비물을 챙겼다. 목장갑과 비닐봉투, 집게가 전부다. 집게를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거추장스러우면 긴 나무젓가락도 유용할 것 같다. 편한 옷과 운동화는 필수다.
처음 든 생각은 “꽤 깨끗한데… 주울 것이 별로 없겠다”였다. 하지만 100m를 지나지 못하고 줍깅이 시작됐다. 담배꽁초 몇 개에 이끌려 건물 사이로 들어서면서 일이 많아졌다.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싱싱한(?) 꽁초부터 며칠을 밟혀 납작해진 꽁초들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만 10여 개. 건물 옆이나 뒤에는 영락없이 꽁초들이 나뒹군다. 재떨이도 있는데 그 옆으로 하얗게 꽁초들이 버려져 있다. 투덜거리면서 10여 개의 꽁초를 주웠다.
그렇게 약 2㎞를 가면서 만난 쓰레기는 다양했다. 구겨진 종이컵, 전단지들, 아이스크림 껍데기가 흔했다. 편의점에서 파는 플라스틱 도시락통도 여럿 보였다. 생수병을 비롯한 플라스틱 음료수병도 꽤 많았고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렸다. 요주의 장소는 화단. 나무와 풀들 사이에 꽁초와 영수증 조각, 마시다 만 음료수 컵이 숨어있다.
집 근처인 의정부시 민락동의 산책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이 자주 다니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지만, 인접한 나무와 풀들 사이에는 군데군데 꽁초와 플라스틱 컵, 비닐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왕래가 잦은 시내 거리보다는 쓰레기가 적었지만, 작은 비닐봉지 하나 정도는 충분히 쓰레기로 채워졌다.
두 곳에서 줍깅을 총 2시간 반 남짓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꽤 활동량이 많다. 배 나온 중년 기자에게 허리 굽혀 쓰레기 줍는 일,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는 일은 꽤 운동이 된다. 쓰레기 한 번 주울 때마다 스쿼트 1회 또는 런지 1회의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운 쓰레기가 모두 74개, 그만큼의 스쿼트나 런지를 한 셈이니 요 정도만 매일 해도 나온 배가 조금은 들어갈 듯하다. 쓰레기 담은 봉투를 들고 뒤를 뒤돌아보니, 소박하지만 그래도 지구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자부심에 나름 뿌듯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