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태

가톨릭 신문 - [공동의 집 돌보기] (4)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by 가정사목부 posted Sep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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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집 돌보기-생태적 회개의 여정]

(4)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

발행일 2022-09-04 [제3309호, 9면]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플랫폼’ 행동 목표 2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대한 응답은 생태 정의를 증진하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수호하도록 불리웠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우리의 행동은 토착 원주민, 난민과 이주민,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연대를 증진하며, 사회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을 점검하고 계발하는 것입니다.”

115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서울이 잠기고 도시가 마비됐다. 하지만 피해의 크기는 똑같지 않았다. 누군가가 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말리고 있을 때, 누군가는 반지하 방으로 쏟아진 빗물을 퍼내야 했다. 누군가가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며 잠을 청할 때 누군가는 창문을 뚫고 들이친 비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누구도 피할 수 없었지만 더 크고 결정적인 고통은 가난한 이들의 몫이었다. 지구의 울부짖음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태풍보다 무서운 삶의 현실

태풍이 잦은 필리핀에서도 보홀섬은 태풍의 직접적인 타격을 덜 받는 편에 속했다. 보홀섬 동쪽에 있는 레이테섬과 사마르섬의 산악 지역을 지나며 태풍의 세력이 쇠퇴하는 덕분이다.

하지만 보홀섬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주민들은 최근 20년 사이 날씨가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점점 더 더워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풍의 횟수가 늘고 강도도 세졌다고 말했다. 달라진 날씨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보홀섬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아르투로씨는 “2010년쯤부터 쌀 수확량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민들은 수확량 감소로 수익이 줄어드는 현실을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필리핀을 덮친 태풍 라이는 며칠 동안 보홀섬을 휩쓸었고, 수많은 집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사라졌다. 당시 태풍으로 피해 입은 주민들을 도왔던 타클로반교구 산하 단체인 소셜 액션 센터(Social Action Center) 프로젝트 매니저 다이디(Daidee)씨는 “태풍이 불어 닥친 며칠 사이 도시가 사라져 버렸다”며 “태풍의 위력도 무서웠지만 하룻밤 사이에 집을 잃고 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의 현실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정부도 태풍 피해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워낙 피해 지역이 광범위해 모든 집을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값싼 코코넛 나무 자재조차 구할 수 없어 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아들과 보홀섬의 안테케라(Antequera)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는 알린 라사카(Arlyn Lasaca)씨도 태풍 라이로 큰 피해를 입었다. 냄비 몇 개와 침대, 작은 TV가 살림의 전부인 얇은 나무판자로 지어진 집은 소셜액션센터의 도움으로 새로 지은 집이다.

그는 “태풍이 불자 눈 깜짝할 새에 집이 날아가 버렸고 갈 곳이 없으니 흙바닥에 천막을 쳐놓고 며칠간 지냈다”며 “세부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큰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형편에 새 집을 짓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총구 겨누는 기후위기

보홀주의 주도인 타그빌라란 시내를 지나면 반쪽이 사라진 체육관 지붕, 담장과 창문이 부서진 성당, 무너진 집의 잔해들 사이로 잘 가꿔진 정원을 갖춘 깨끗하고 견고한 집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사나운 태풍의 공격에도 집을 잃지 않았고, 금세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환경과 사회의 훼손은 특히 이 세상의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48항)고 밝혔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그 피해는 가난한 이들, 여성, 유색 인종, 청소년 등 보다 취약한 이들을 향한다는 것이다.

기후 불평등은 나라간, 계층간, 그리고 세대간의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온실가스의 70%는 세계 인구의 20% 이하인 선진국들이 배출하지만 그 피해는 온실가스의 3% 미만을 배출하는 개발도상국의 10억 명이 겪는다. 또한 견고하고 안전한 집을 갖지 못한 가난한 이들은 폭염에 목숨이 위험해지거나 태풍과 폭우에 집을 쉽게 잃게 되는 상황에서 불평등을 경험한다.

지난 6월 있었던 태아와 5세 이하 아이 등 62명을 청구인으로 하는 아기들의 ‘기후변화 소송’은 세대간의 기후 불평등을 대변한다. 이들은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지난 2018년 대비 40%로 규정한 것은 아기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 “가장 중요한 생물권 보존 지역에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자기의 현대와 미래를 희생해 가면서 부유한 국가들의 발전에 계속 이바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기후 변화에 관해 차등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찬미받으소서」 52항)


기후 불평등의 현장, 한국에서도 재현되다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재킷 촬영지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삼척의 맹방해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의 앨범에 실릴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맹방해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해변이란 뜻의 명사십리(明沙十里)란 수식어가 붙은 곳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새하얀 해변과 그 끝에 걸린 백두대간은 ‘천혜’의 자연이란 말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맹방해변의 ‘명사십리’라는 수식어는 이제 옛말이 됐다.

포스코에너지가 출자한 삼척블루파워에서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석탄 운송을 위해 맹방해변 앞 바다에 항만부두 및 방파제를 만들면서 심각한 해안침식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설물은 모래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방해했고 명사십리였던 맹방해변의 모래를 깎아 내려갔다. 게다가 유실된 모래를 채워넣는 과정에서 해변에 적합한 것이 아닌 인근 하천의 퇴적토를 사용했다는 정황도 주민들에 의해 알려졌다. 거뭇거뭇한 모래가 쌓인 맹방해변은 아름다웠던 과거의 명성을 잃은 지 오래다.

바다가 아름다움을 잃자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다. 바다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이곳에서 민박집을 하는 주민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

상맹방 주민 이순주(49)씨는 “우리 마을은 주로 농사와 민박을 하는 주민이 많은데, 해변이 훼손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마을 분위기가 크게 침체됐다”며 “서울에서 맹방으로 시집와서 가장 좋았던 것이 아름다운 해변을 보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젠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책임 있는 이들은 그 자리에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초미세먼지량은 연간 570톤으로, 30년의 운영기간 동안 대기오염물질에 의해 최대 1081명의 조기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기후솔루션은 발표했다.(「생명을 앗아가는 나쁜 전기, 석탄화력」)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발전소가 설치돼 있거나 설치될 지점으로부터 반지름 5㎞ 이내에 속하는 지역을 지원한다. 이는 발전소로 인한 피해가 반경 5㎞ 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삼척의 경우 시청을 비롯해 많은 시민거주지가 발전소 반경 5㎞ 안에 있다는 점에서 그 피해가 클 것으로 삼척석탄화력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공동대표 성원기)는 우려하고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농작물이다. 삼척에서 주로 재배하는 감자, 시금치, 딸기 등 농작물에 석탄분진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지구 온난화를 야기하는 장본인은 삼척에 없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으로 수혜를 받는 사람들 역시 삼척에 없었다. 망가진 바다와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 아래 살아갈 주민들만이 삼척에 남아있을 뿐이다. 기후 불평등의 현장은 필리핀에서도 한국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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