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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개념 확대하려다 가정의 가치 흔들린다

 

2021.05.23발행 [1614호]

 

지난달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는 민법을 개정해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이가 엄마의 성(姓)을 따를 수도 있도록 한다는 데 관심이 쏠리며 그 외에 내용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계획안에는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의 개념과 역할에 큰 변화가 불가피한 정책들이 포함돼 있다. 정책을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계획’의 쟁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계, 그리고 생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가 우려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건강가정기본계획, 무엇이 담겼나
 

“‘동성애’로 이해되는 ‘비혼 동거’와 ‘사실혼’을 법적 가족 개념에 포함하는 것도 평생을 건 부부의 일치와 사랑, 그리고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정의 고유한 개념과 소명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이에, ‘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공식 입장을 분명히 전하며 여러 가지 논란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판단과 실천에 대해 성찰하고자 합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2일 생명 주일을 맞아 이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가정과 혼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란 담화문을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남자와 여자, 몸의 의미’, ‘인간의 동등함, 부당한 차별의 반대’, ‘성향과 행위의 구별’, ‘혼인과 가정, 객관적 인정’, ‘자녀 성교육, 인격적 사랑의 교육’, ‘참된 자유의 의미’ 등 담화문을 6개 단락을 나눠 각각의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염 추기경이 가정과 혼인과 관련해 이처럼 상세하게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4월 27일 여성가족부(장관 정영애)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여가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은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 가족 정책 추진의 근간으로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우선 혼인ㆍ혈연ㆍ입양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현행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자녀의 성(姓)을 결정할 때 누구 성을 물려줄지 부부가 협의해서 정하도록 하고, 친모의 성명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거나 친모가 협조하지 않으면 출생신고가 불가능했던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 차별도 없애는 내용이 들어갔다. 아울러 결혼 관계 밖에서 태어난 자녀를 ‘혼외자’로 구분해 민법과 출생신고서에 표기하는 기존 친자관계 법령 개정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밖에 모든 아동이 빠짐없이 국가에 출생신고가 되도록 의료 기관이 국가 기관에 아동 출생을 통보하는 ‘출생 통보제’를 도입하고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에 대해서는 법원이 감치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다문화가족에 대한 혐오발언 등을 금지하는 법 조항도 신설할 계획이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건강가정기본법과 민법을 개정해 동거·사실혼, 돌봄과 생계를 같이 하는 노년 동거인, 위탁가정도 모두 가족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이다. 여성가족부는 혼인·혈연·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던 전통적 가족 제도가 붕괴되고 있어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기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여가부의 주장은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1인 가구 비중이 40%에 달하지만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가구의 비중은 2019년 29.8%로 줄어드는 등 가구의 구성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또 미혼모ㆍ부, 비혼 동거 증가 등 기존 제도 안에서 담아내기 어려운 동거도 계속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혼 동거, 동성혼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그러나 가족 개념을 확대하려면 여가부가 관장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은 물론 민법까지 개정해야 한다. 사회의 근간인 민법을 개정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민법까지 바꿔 비혼 동거, 사실혼, 돌봄과 생계를 같이 하는 노년 동거인, 위탁가정 모두를 가족으로 바꾸자는 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혼모·부 가족이나 장애인 가족, 외국인 가족은 이미 현행법에 따라 법적인 가족에 준해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사실혼의 경우도 법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점차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 법적 가족의 범위에 명백하게 포함되지 않는 건 ‘비혼 동거’다. 비혼 동거에는 동성 간 결합도 포함된다. 염수정 추기경이 긴 담화문을 발표한 것도,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 생명 운동을 하는 시민사회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최근 가톨릭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에서도 동성애, 동성혼이라는 말을 쓰기는 아마 좀 불편하고 논란이 될까 봐 비혼 동거라고 쓴 것 같다”며 “비혼 동거가 동성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전국 753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건강가정기본법개정안반대전국단체네트워크도 “가족의 해체를 촉진하고, 역차별 등 사회의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생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전윤성(자유와 평등을 위한 법정책 연구소 연구실장) 변호사는 “현재까지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는 총 29개 국가로 동성혼 합법화 이전에 비혼 동거 등록 제도를 도입했다“며 “비혼 동거 등록제는 입법 저항을 최소화시키는 완충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여가부는 “동성 커플을 확대 가족의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앞으로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며 한발 뒤로 물러난 상태다.
 

가족 개념의 확대, 가정의 가치 위협
 

지난 6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ㆍ정춘숙 의원이 대표발의한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개정안은 건강가정기본법에 있는 ‘가정’이라는 용어를 모두 ‘가족’으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대로라면 ‘가정의례’는 ‘가족의례’, ‘가정의 달’은 ‘가족의 달’, ‘이혼 가정’은 ‘이혼 가족’으로 바뀐다. 또 ‘가족이라 함은 혼인ㆍ혈연ㆍ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라는 3조 1항은 삭제된다.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된 법안은 가족 개념을 확대하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일정대로 2025년까지 모두 법제화할 경우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대상은 대폭 확대된다. 또 개정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면 가정이란 말은 사라지고 가족으로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동거인을 가족으로 확대하거나 아버지의 성을 원칙적으로 적용하는 부성우선주의 훼손 등 논란이 큰 부분에 대해 충분한 공론화와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성급히 추진할 경우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진통과 혼란이 벌어질 우려가 크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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