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의 해, 우리 시대 요셉을 찾아서]
좋은 아버지 영성, 그 시작은 아내에게 '자상한 남편' 되는 것
2021.05.23발행 [1614호]
“내 아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들이 행복하더라고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요.”
권혁주(라자로, 46, 서울 연희동본당)씨는 성실한 아버지다. 2002년 성당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며 만난 아내와 결혼 후 세 자녀(초4ㆍ초6ㆍ고2)의 아버지로 살고 있다. 2002년부터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에서 부부여정과 아버지여정 등의 사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교재를 제작해온 권씨를 만났다.
권씨는 2002년 2월 14일 서울대교구 사목국에 입사했다. 첫 직장에서 공연 기획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교구에서 일하게 됐다. 가정사목부 담당 신부는 미혼인 권씨에게 “가정사목부에서 일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조건(?)을 내걸었고, 권씨는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와 두 달 후 결혼을 했다. 물론 혼인성사 주례는 가정사목부 담당이었던 김동춘 신부가 맡아줬다.
“교구에 가정사목 담당 부서가 신설된 것은 1988년도였지만 실질적으로 본당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정사목 프로그램이 많지 않을 때였습니다. 심리학, 신학 공부를 해야 했고 교황 문헌도 들여다봐야 했어요. 개신교회에서 진행하는 가정사목 프로그램 참관도 직접 했고요.”
권씨는 입사한 해에 결혼했고, 가정사목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구하면서 그야말로 혼인에 대해 선행학습을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정사목부에서 가장 먼저 기획한 것은 부부관계를 돕는 프로그램이었다. 10주 동안 10개 주제를 다루는 부부워크숍을 개발했다. 먼저 남녀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고, 부부 대화법, 갈등 해결법, 자녀와의 관계 등을 알아보는 과정으로 가톨릭 정신에 맞게 기획했다. 부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부부워크숍은 부부여정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각 본당에 확산됐다.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권씨가 가정사목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한다고 해서 부부싸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아내는 하나부터 열까지 꼼꼼해서 세심한 남편을 기대했는데 그게 안 됐죠. 지금도 자주 싸우고 화해하고 그래요.”
2004년에 첫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된 그는 막막했다.
“육아를 해본 경험이 없죠. 아기가 태어났는데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기저귀는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모든 것이 다 생소했어요. 크면서 무얼 먹어야 하고,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잘 몰랐죠. 결국에는 아내가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는데 아내한테 미안한 마음이에요.”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조금 더 좋은 남편이었다면’ 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에는 내 아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가 행복하니까요. 아내를 사랑하는 게 아이를 사랑해주는 좋은 방법이란 걸 알았죠.”
권씨는 부부여정 프로그램에 이어 아버지를 위한 프로그램도 구상했다. 아버지의 삶 자체에 초점을 두고, 아버지들끼리 마음 안에 있는 걱정을 털어놓고, 서로 공감하며 위로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스스로 자신은 어떤 아버지인지 냉철하게 평가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바꿀지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줬다.
“아버지들이 정말 바쁘게 사는데 자녀에게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심지어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다가 가족 안에서 문제가 터지면 후회하고요. 우는 아버지들도 참 많았어요.”
그는 “지금도 스스로 저 자신한테 ‘나는 과연 좋은 아버지인가?’ 되묻지만 아버지로서 항상 부족한 것 같고, 채워지지 못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권씨는 세 자녀의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크게 틀어진 적이 없다. 가정사목 프로그램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영성을 삶에서 연습할 기회가 많았다.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따라 알아야 할 지식적인 측면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나 기본적인 틀은 변하지 않더라고요. 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었어요. 아이의 장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는 부모인지, 단점을 뜯어고치려고 하는 부모인지 그 차이에요. 이 작은 차이가 좋은 부모와 나쁜 부모를 가르는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아이가 실패도 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탐색할 수 있게 적절한 질문을 던져주고, 같이 대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부모가 자기 고집과 주장이 세지는 사춘기 자녀들을 억압하지만 부모 역할의 핵심은 내 아이가 독립하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에 있다”고 설명했다.
권씨가 집에 가면 고등학생 딸은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낸 이야기들을 털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아직 어린 초등학생 아들 둘은 아빠 몸을 미끄럼틀 삼아 놀기 바쁘다.
“제가 가족관계를 공부한 전공자도 아니었고, 가족에 대한 공부는 생소한 분야였어요. 다만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권씨는 지금까지 아버지로서 이 두 가지 만큼은 지키려 꼭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는 것과 아내와 다툰 후 꼭 아이들 앞에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이다.
“우리 부모는 크게 싸워도 화해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크게 놀라지 않아요. 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면 자기 때문에 싸우는 줄 알거든요. 스스로 자책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메시지를 잘 전달해줘야 합니다. ‘너 때문에 싸운 게 아니야. 엄마 아빠가 지금은 화해해서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자 봐봐’ 하면서 포옹하고 뽀뽀하는 모습을 일부러 보여줘요. 그래야 아이들 마음에 큰 상처가 남지 않거든요.”
그는 지난해 서울가톨릭경제인회에서 모범 근로자상을 받았다.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가정사목 관련 프로그램을 위핸 교재를 제작하고, 매뉴얼을 개발한 공로다.
그는 이제 2019년부터 사목국 기획연구팀에서 영성 제작 및 편집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교육에 필요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권씨는 “부모 자녀 관계 안에서 정답이 있는 건 아니라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대답을 같이 찾아가는 것이 건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내가 배우자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부부여정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처음 하게 되는 토의 주제가 부부끼리 서로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지금 배우자가 가진 걱정거리, 배우자가 좋아하는 색깔, 음식 등이요. 그런데 다 맞추는 부부가 없더라고요. 단순한 문제조차도 서로 모르고 있어요. 그만큼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서로 있는 모습을 그대로 봐주고요.”
권씨는 “시대가 원하는 아버지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면서 “아내에게는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이 되어 주고 싶다”고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