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는 공공재입니다]
(12) 기후위기와 청소년 기후 행동
발행일 2021-07-04[제3252호,8면]
“현정님, 돈 많아요?” 기후위기 속에서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에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 저 짧은 말은 내가 기후위기 속에서 안전할 수 없음을 가장 가슴 아프게 표현한 말이었다. 기후위기에서 안전할 사람은 사회적 권력과 재력이 있는 사회 기득권층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기후위기 속에서 버티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기후행동을 시작한 지 3년차다.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우울감과 무력감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당사자로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한테 기후위기는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보장될 수 없다.
처음 기후위기를 접했을 때 기후위기의 거대함에 압도당했다. 기후재앙으로부터 회복 가능한 수준으로 기후 대응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0년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큰 부담이었다. 기후위기는 개인적 실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거대한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나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도 견고한 지금의 시스템을 전복한다는 건 어찌 보면 불가능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해야만 했다. 권력도, 부도, 대단한 능력도 없는 평범한 나는 기후위기 속에서 나의 일상, 권리, 생존, 건강, 사랑하는 사람들 그 어느 것 하나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공포를 느낀 순간부터 나는 무작정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박스를 주워와서 피켓을 만들어, 내가 하고 싶은 말들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문구들을 적었다. 피켓 하나하나마다 분노와 무력감, 우울, 처절함, 절박함의 감정을 담았다. 피켓을 들고 무작정 거리로 나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기도 했고, 교육청에서 소문을 듣고 만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석탄발전소를 끌 수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할 수도 없었다.
더 큰 사회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사자들끼리의 연대가 필요하고 더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2019년 말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단체에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다른 동료들을 만났다. 각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낀 계기, 나이, 지역,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이 달랐지만 기후위기 대응을 외친다는 것 하나는 같았다.
기후운동을 시작한 뒤로 이전이라면 그냥 넘겼을 일들이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긴 장마나 잦은 태풍이 더 이상 단편적인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작년 여름 내가 살던 울산에도 태풍이 찾아왔다. 동네 집들의 창문이 깨졌고, 차들이 파손됐고, 신호등이 꺾여 교통은 마비되고, 정전으로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고 원전은 가동을 멈췄다. 내가 겪은 일은 단 하루였고 그저 불편한 일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하루 때문에 여름 내내 공포스러웠다.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진다면 이러한 일들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전은 잠시 가동을 멈추었을 뿐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큰 공포감을 주었다. 기후재난이 일상화될수록 원전은 더 많은 위험을 겪게 되고, 더 불안정해질 것이 뻔하다. 우리 집은 원전으로부터 고작 3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다면, 나는 내가 살던 곳을 떠나야 하고, 우리 가족은 생계가 끊기고, 건강과 생존조차 지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여름 내내 혹시나 원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공포를 느꼈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을 지새우면서 원전의 상태를 수백 번 확인했다.
기후재난 속에서 나는 안전할 수 없었고, 우리 가족은 지금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무력감을 느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후운동을 하는 것,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밖에는 없었다. 기후위기를 방관하는 정부와 국회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책결정권자들은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변화의 주체였지만 그들은 나를 변화시킬 대상으로만 여겼다.
우리는 이미 변화를 만들었고 지금 변화의 흐름 속에 서있다. 우리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야만 하고,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변화의 주체로 충분히 변화를 만들 수 있지만 정책결정권자는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들이 계속 방관만 한다면 우리는 수동적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정책결정권자들이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한 것처럼 우리는 더 많은 노력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큰 변화가 이제는 가능해 보인다. 작은 실천만 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할 때는 지났다. 이제는 더 큰 변화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면, 함께 우리 사회의 더 큰 변화를 외치자.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