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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니 좋았다] <3> 녹색 성당 만들기 (하)

북극곰과 지구를 지키러 '자원순환가게'로 가는 아이들

발행일 2021-09-12 [1629호]

글 싣는 순서
① 녹색 가족 만들기
② 녹색 성당 만들기 (상)
③ 녹색 성당 만들기 (하)
④ 녹색 세상 만들기 (상)
⑤ 녹색 세상 만들기 (하)

 

유치원생들은 왜 자원순환가게에 갔을까

“수녀님! 선생님! 우리 얼른 지구랑 북극곰 도와주러 가요!”

자기 몸만 한 비닐 가방을 든 유치원생들이 오후 2시 ‘땡’ 하자 줄지어 교실 밖으로 나간다. 가방에 든 내용물은 고사리손으로 한 주 동안 모아 깨끗이 씻은 재활용 쓰레기들. 매주 화요일마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수원교구 신흥동성당 부설 성모유치원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이들 발길이 향하는 곳은 유치원에서 100여m 떨어진 컨테이너 건물. 지난해 1월 문을 연 성남 자원순환가게 ‘신흥이(신흥2동) re100’이다. IT 기업 (주)에코투게더’가 성남시ㆍ성남환경운동연합과 힘을 모아 만든 국내 최초 자원순환가게다.

자원순환가게는 재활용품을 가져다주면 종류별로 무게를 달아 돈으로 돌려주는 곳이다. 금전적인 보상으로 시민들에게 분리배출을 장려해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에코투게더에선 처음에 현금을 주다가 7월부턴 지역 화폐로 제공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생활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비율은 40% 정도다. 아파트와 달리 분리수거장이 없는 주택이나 빌라에선 분리배출을 안 하고 쓰레기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자원순환가게는 이곳 주민들이 분리배출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재활용품 분리배출 거점’이 된다. 이곳에선 비우고, 헹구고, 분리하고, 섞지 않은 깨끗한 재활용품만 받는다. 그래서 성남에 있는 자원순환가게는 모두 이름에 ‘re100’이 들어간다. ‘가게에 들어온 재활용품은 100% 재활용(recycle)된다’는 뜻이다.


재활용품 판 돈으로 북극곰과 지구를 살릴래요

시간이 되자 성모유치원생들이 재활용품 가방을 들고 신흥이 re100으로 향했다. 가게에선 앞치마를 두른 ‘자원(순환)관리사’들이 아이들을 반겼다. 자원 관리사는 성남시에서 급료를 받고 일하고 있다. 이들은 가방에서 재활용품을 꺼내 저울 위에 올려 무게를 재고 기록했다. 나중에 보상금을 계산하기 위해서다. 재활용품 가격은 종류마다, 품목마다 다르다. 일례로 플라스틱은 5개 품목으로 나눠 가격을 달리 쳐준다. 플라스틱이라는 한 종류로 묶어 내놓으면 따로 후속 선별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용자 입장에서 돈 버는 재미가 가장 쏠쏠한 품목은 투명 페트병이다. 다른 플라스틱은 1㎏당 100~200원인데 반해 1개당 10원씩 한다. 쓰임새가 많아서 그렇다.

재활용품을 판 돈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eco2gather(에코투게더)’로 적립된다. 일정한 액수가 되면 ‘성남사랑상품권’ 같은 지역 화폐로 바꿀 수 있다. 이날 성모유치원은 1914원을 벌었다. 임라희(율리에타, 7)양은 “돈도 벌고 지구도 깨끗하게 해서 기분 좋다”고 웃었다.

성모유치원은 2020년 1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매주 재활용품을 팔아 약 80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어린이들 뜻에 따라 전액을 환경단체(성남환경운동연합ㆍ가톨릭기후행동)에 기부했다. ‘선순환’을 이룬 셈이다. 원장 이민자(에드문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원관구) 수녀는 “7살 반 아이들과 회의를 열어 모은 돈을 어떻게 쓸지 의논했다”며 “다들 아픈 지구를 살리는 데 쓰자고 입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분리배출과 기부를 통해 자부심과 자존감을 갖게 됐다”며 “5~6살 아이들이 부러워하며 얼른 ‘형님반’이 되고 싶어 한다”고 웃었다. 어린이들의 솔선수범으로 어른들도 변화했다. 신흥동본당 신자들도 깨끗이 분리배출한 재활용품을 들고 자원순환가게를 즐겨 찾고 있다. 자원관리사 중에도 신자가 있다. 이 수녀는 “다른 성당에선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오고, 분리배출도 안 된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 많이 들려온다”며 “분리배출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자원순환가게가 성당 주변에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모든 성당에 자원순환가게가 생긴다면

성당은 ‘녹색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풀뿌리 거점이다. 그렇기에 성당 ‘주변’이 아닌 성당 ‘안’에 자원순환가게를 만들면 어떨까. 입지 조건은 충분하다. 우선 성당은 전국에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처럼 관할구역이 정해져 있다. 신자뿐 아니라 성당 인근 지역 주민도 이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성당은 대개 독립된 부지를 갖췄다. 재활용품 분리수거대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다. 성당에는 훌륭한 인적자원도 있다. 신앙을 바탕으로 봉사하는 ‘신자’다. 자원순환가게를 운영하는 자원관리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생태환경분과’나 신자 모임 ‘하늘땅물벗’이 있는 본당에서 특히 많은 참여가 가능하다. 한편, 신자들이 재활용품을 판 돈은 개인이 아닌 성당 명의로 적립해야 할 것이다. 취약계층을 돕는 데 쓰기 위해서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로 가장 많이 고통받는 이들이 어렵고 가난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곧 신자들이 성당 자원순환가게를 이용하는 일은 이른바 ‘녹색 헌금’을 하게 되는 셈이다.

아이디어를 구상했으니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코투게더 박영성 PD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 이에 박 PD는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며 “공익적인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가톨릭교회와 함께 추진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때마침 교회 안에서도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컸다. 서울대교구 하늘땅물벗은 앞으로 7년간 각 성당에 재활용 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은 올해 초 기자에게 “각 성당에 깡통 압축기나 페트병 파쇄기 등을 설치해 재활용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천교구 환경사목부도 인천광역시와 자원순환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비슷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이에 기자는 에코투게더와 교회를 잇는 가교가 되기로 했다. 에코투게더와 서울ㆍ인천교구는 기자의 중개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수차례 만나 실천 계획도 논의했다. 기자도 정보를 공유 받으며 진행과정을 취재했다.


성남동성당 자원순환가게에서 배운 것들
 

성당 자원순환가게 운영 방식에 대해 고민하던 중, 앞선 사례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수원교구 성남동성당에 있는 ‘모란 re100’이다. 지난해 11월 청소년을 위한 ‘기쁨샘 카페’ 건물 뒷마당에 문을 열었다. 주임 최재철 신부는 성남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이다. 전국에서 자원순환가게가 있는 종교시설은 성남동성당이 유일하다.
 

모란 re100은 매주 수ㆍ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까지 운영한다. 오전 10시 미사에 오는 신자를 주된 이용자로 삼고 있다. 7월 7일 가게에서 만난 자원관리사 그라시아씨는 “약 100세대가 이용하고 있다”며 “인터넷 기사를 보고 청소년과 청년들이 멀리서도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많이 오는 이들은 어르신 신자”라며 “‘신부님 말씀을 따르겠다’며 작은 재활용품이라도 꾸준히 들고 온다”고 덧붙였다.
 

최재철 신부는 “먼저 신부들이 지구와 환경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 의식과 실천 의지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당장 결과가 안 나오더라도 꾸준히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며 끈기와 인내를 촉구했다. 최 신부는 ‘전국 성당에 자원순환가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아주 바람직하다”며 “꼭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모든 성당에 만들려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분리수거장이 없는 단독 주택가 위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성남동성당에서 보고 느낀 바를 정리해 서울ㆍ인천교구에 공유했다.

 

인천교구에 자원순환가게 들어서다
 

그리고 마침내 8월 13일 인천교구 환경사목부에서 반가운 소식을 보내왔다. 인천 답동 가톨릭사회사목센터에 자원순환가게 1호점을 열었다는 이야기다. 이날 가게를 찾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생들은 분리배출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자원순환가게는 현재 교구청 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재활용품 10여 종류를 모은다. 일정량이 쌓이면 에코투게더에서 거둬 간다. 보상금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쓰일 계획이다.
 

아울러 인천교구는 11월 계양구 주택가에 위치한 효성동성당에 자원순환가게 2호점을 열 계획이다. 효성동본당은 사제와 수도자ㆍ신자 모두 재활용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늘땅물벗에서 처음으로 구성된 가족벗인 ‘반딧불벗’이 있다. 반딧불벗은 앞서 기자와 함께 성당에서 분리배출 교육과 실습을 했다. (본지 8월 29일 자 10~11면 ‘보시니 좋았다’ 1회 <녹색 가족 만들기> 참조)
 

효성동성당 자원순환가게는 우선 신자를 대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재활용품 분리수거대는 계양구청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다. 성당 쓰레기장이 있던 자리에 설치된다. 재활용품을 판 돈은 ‘에코투게더’ 앱을 통해 성당 기금으로 모여 국내외 취약계층을 돕는 데 쓰인다. 인천교구 사회사목국장 정성일 신부는 “각 성당에 자원순환가게를 만들면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 주민이 성당 자원순환가게를 이용하면 ‘녹색 선교’의 기회도 생길 것”이라며 “앞으로 교구 내 자원순환가게를 늘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대교구 하늘땅물벗도 성당이나 교회 시설에 자원순환가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녹색 성당’ 자원순환가게의 미래
 

사실 성당 자원순환가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만 있지는 않았다. ‘코로나19 시국인데 왜 일을 벌이느냐’, ‘쓰레기 때문에 성당이 지저분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분리배출은 반짝하고 끝나는 유행이 아니다. 언젠가 끝날 코로나19 시국 이후에도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계속 해야 할 의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배달음식과 택배가 늘면서 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가 급증하는 현실이다. 자원순환가게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자원순환가게에는 오로지 깨끗하게 분리배출한 쓰레기만 모인다. 애초에 이물질이 남아 있거나 오염이 심한 재활용품은 받아주지 않는다. 한편, 인력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자원순환가게에선 대개 봉사자 2~4명이 일주일에 1~2일, 하루 3시간 정도 일한다. 절대량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에코투게더 유승희 대표는 “자원순환가게는 특정한 형태를 고집하지 않는다”며 “각 성당 형편에 맞게 유연하게 운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성당 카페 안에 투명 페트병을 넣으면 개당 10원씩 적립되는 무인 파쇄기를 놔두는 식이다. 에코투게더가 개발하고, ㈜초록별이 제작한 이 파쇄기는 음료수 자판기처럼 생겨 위화감이 없다. 페트병을 파쇄기로 잘게 분해하면 운반비용이 10분의 1로 줄고, 재활용률도 올라간다.
 

유 대표는 “성당에 자원순환가게를 만들면 선한 영향력을 널리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수도권 지자체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분리배출 거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성당의 역할에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흥동성당 성모유치원생처럼 미래세대가 자원순환가게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며 “다른 종교도 소식을 듣고 동참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에 성당 자원순환가게가 잘 정착한다면 해외에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쓰레기 처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아시아 가난한 국가들은 재활용에 관심이 많다. 캄보디아 바탐방지목구장 엔리크 피가레도 몬시뇰도 2016년 각 성당을 재활용 거점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고 한다. 이에 기자는 자세한 경위를 알고,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몬시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자원순환가게와 페트병 파쇄기 등에 대한 사진과 자료를 첨부했다. 아쉽게도 몬시뇰로부터 답신을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교회 내 기관을 통해 다시 접촉을 시도할 계획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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