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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만들자] 생명의 보금자리 '가정'

-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생명의 문화 -

(11) 사후 - 위령기도

발행일 2021-11-21 [제3270호, 18면]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신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도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애 주기는 세상을 떠난 생명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부터 사랑과 생명의 문화’ 기획 이번 편에서는 이 세상을 떠난 생명과 그 유가족을 위한 위령 기도에 대해 알아본다. 먼저 떠난 남편을 위해 매일 기도하며 가정 안팎에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박호주(루치아)씨 가정도 만났다.

■ 기도하는 공동체, 가정

주교회의는 가정을 위한 교서 「가정, 사랑과 생명의 터전」 62항에서 “가정은 모범적 사랑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중에서도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부부 간, 부모와 자녀 간에 일치를 이루게 하는 뿌리는 바로 사랑이며, 사랑의 공동체가 되려면 신앙이 있어야 하고, 신앙은 기도를 통해 성숙되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들은 기도하면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을 키우고 그렇게 느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며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 기도로 사랑 키워

이렇게 가정의 신앙을 키우고 사랑을 고양시키는 기도의 중요성은 세상을 떠난 생명이 있는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들보다 먼저 떠난 가족 구성원을 그리며 기도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이를 통해 세상을 먼저 떠난 이와 남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정 교서」 4항에서 “기도는 성자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도록 만들어 준다”며 “기도는 가정이 하느님의 ‘힘’을 나누어 받도록 도와줌으로써 가정의 힘과 정신적 일치를 증대시켜 준다”고 설명했다.

■ 생명의 소중함 인식 돕는 위령 기도

이러한 가정에서의 기도, 특별히 위령 기도는 유가족이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한다. 위령 기도를 하면서 유가족들은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거듭 깨닫고, 그 과정에서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함께하는 생명들에게는 곁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다짐과 실천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초대 원장 이동익 신부는 저서 「생명, 인간의 도구인가?」에서 “생명의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이라며 “하느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 생명이 하느님께 영을 받은 것이고, 그분한테서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도 귀중하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회칙 「생명의 복음」 53항에서 “하느님만이 그 시작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라고 단언했고,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생명운동본부는 이와 관련해 「한국 천주교 생명운동 지침」에서 생명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모든 활동의 기초가 ‘기도’(41항)라며 기도는 사람들에게 깊은 종교적 경외심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켜(38항) 주지만, 하느님 의식이 실종되면 인간 의식, 곧 인간 존엄성과 생명 의식도 사라진다(7항)고 지적했다.


■ 유가족 위한 미사·교육

한국교회에서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상장 예식」을 발간하고, 각 교구 연령회연합회는 세상을 떠난 이와 유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등 여러 노력을 펼치고 있다. 교구 연령회연합회에서는 세상을 떠난 생명과 그 유가족을 위해 미사 봉헌, 봉사자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별 가족들이 상실의 슬픔과 고통 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본당도 있다.

「생활교리」를 펴낸 고(故) 김경식 몬시뇰은 해당 책에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사랑으로 서로 돕는 것을 즐겨하신다”며 죽은 이들을 위해 기일뿐만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기도해야 하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자연히 하느님 나라에 대해 묵상하게 되는 등 자신의 성화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사는 가정들 - 세상 떠난 남편 위해 매일 기도하는 박호주씨 가정

“기도 덕분에 서로 힘껏 사랑하며 살게 됐죠”
가족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도 기도하며 하느님 사랑 깨닫고 가족과 더 큰 사랑 나누게 돼

 

약 3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박호주(루치아·52·서울 혜화동본당)씨는 매일 묵주기도를 한다. 2012년 초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남편을 위한 기도를 쉬어 본 적이 없다. 박씨가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까닭은 먼저 떠난 남편을 위한 당연한 일이라고 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남은 가족들의 소중함도 자각할 수 있어서다.

남편과 사별한 박씨는 현재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머니를 보며 박씨는 너무 힘들어 ‘엄마만 아니었으면 내가 돈도 더 잘 벌고 편했을 텐데’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남편이 쓰러진 뒤 매일 기도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다가 언젠가 이 기도를 어머니를 위해 봉헌한다고 생각하자, 오늘 곁에 살아 숨 쉬고 계신 어머니와 이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졌다.

특히 박씨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녀들을 포함한 가정 내 사랑도 더욱 돈독해졌다고 밝혔다.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낸 아이들에게 그 빈자리는 크겠지만, 7년 넘게 뇌사 상태의 남편을 함께 돌보고 여읜 후에는 기도하면서 남은 가족 구성원들 간 애틋함은 더욱 커졌다. 박씨는 “고1, 고3이라 한창 예민하고 다툴 수 있는데 아이들이 사이가 좋고, 남편을 위해 기도하면서 저도 하느님 사랑을 많이 느꼈다”며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박씨는 사후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하고 본당 연령회 봉사자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박씨는 이제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했다면서 앞으로도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그때마다 느끼는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을 주변에 알리고 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가족의 죽음은 슬프고 그 슬픔을 잊으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잊기보다 기도하며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된다고 밝힌 박씨는 자신도 앞이 깜깜해서 다 포기하려 했던 적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저와 같은 분들이 그를 위해 많이 기도하고, 지금 곁에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서로 힘껏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당장은 힘들어도 기도밖에 없고,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모두 맡기면 하느님께서는 늘 더 큰 사랑과 감사한 일들을 주시니까요.”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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