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알아봐요 몸신학]
(5) 가정과 생명
발행일 2021-07-18 [제3254호, 4면]
생명 존중은 부부 관계 안에서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한 가정 안에서 먼저 시작된다. 부부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정결의 삶을 살 때, 그 가정에서는 인격을 수단화하지 않고 존중하며 사랑을 한다. 정결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하고, 절제는 성사생활을 통해 도움받을 수 있다.
왜 생명을 존중해야 할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생명의 의미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 생명은 혼인적 의미를 지닌 몸을 갖고 태어난 존재다. ‘혼인적 의미’란 이성과 친교할 수 있도록 창조됐고, 자기 증여해야 하며, 일치·출산할 수 있도록 생겨났다는 뜻이다. 하느님께 생명을 받은 인간은 이 의미를 살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 생명은 신적인 생명이다. 그 본성상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돼 육체적이고 현세적인 삶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을 존중한다는 사실은 몸을 존중하며 인격적 사랑을 한다는 것이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을 존중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계획을 존중하고, 생명과 사랑, 인격적 문화가 주는 참 행복을 누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생명을 존중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생명에 대한 거부는 하느님에 대한 거부다. 하느님 모상으로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사명을 차단하는 행위이며, 이렇게 하느님 모습이 사라진 곳에는 악이 스며든다. 그것이 죽음의 문화의 시작이다.
죽음의 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인간이 사랑과 출산을 성에서 떼어 낸다. 인격적 사랑을 하며 부부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출산을 성에서 분리함으로써 쾌락만 맛보려 한다. 이러한 죽음의 문화에서 인간은 상대를 인격적 대상이 아닌 자기만족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죽음의 문화는 피임에서 시작된다. 피임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 충족과 쾌락을 위해 생명을 없애겠다는 낙태를 전제로 한다. 이는 부부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 부성과 모성을 주지 않는 행위이고, 생명을 거부하는 태도다. 이렇게 될 때 둘은 더 이상 하느님· 배우자와 일치할 수 없으며, 자녀는 선물이 아닌 부모의 욕심·욕구 충족 수단이 돼 버린다.
그렇다면 계속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아니다. 교회는 자연주기법을 강조한다. 자연주기법은 자연 질서를 어기고 몸과 성의 의미를 거스르며 인격을 수단화하는 피임과는 다르다. 자연 질서에 순응하며 몸과 성의 의미를 존중하고 참된 사랑의 관계 속에서 부부가 책임감을 더 갖게 한다.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고 몸과 성의 의미대로 인격적 사랑을 하며 살아갈 때 생명의 문화는 형성된다. 그렇게 살아야 우리도 참 행복에 이를 수 있다.
그동안 ‘몸 신학’을 통해 몸, 성, 참된 사랑과 인격·정결, 혼인·독신 생활, 가정과 생명에 대해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삶 속에서 잘 살고, 주위에도 알려 생명의 문화를 확산하는 분들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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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기자 lsy@catimes.kr